낙서장
함정
by merlyn
2013. 2. 23.
어디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물론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으니 따로 뭔가 의젓하게 주장하고 지킬 것도
없지만
(이럴 땐 내 세상이 콧구멍만 한 것이 다행^^)
그래도 일상의 편견에선 자유로와 보자고 애쓴다. 잘나서가 아니라 뒷발질의
명수, 타고난 당나귀 체질이라 그렇다.
그런데 내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오래 있는 사람이 남편이라 다툼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여자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 으악!!! 했던 말, "여자가 신문을 보다니~~"
난 이 남자가 미쳤나???
했다.
(5년 후 쯤 결혼한 동생은 제부에게 '투표는 남편이 정해준 후보에게 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단다. 우웩~~)
둘 다 경상도
남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음~ 그러고 보니 '전라도 사람은~~' 이런 말 가지고도 싸웠다.
또 그러고 보니 '경상도 남자'라고 묶은
것도 편견이긴 하네.
여기까진 그래도 견딜만한데 (내 주장이 옳다고 믿기만하면 되니까)
그 주장에 뒷통수를 맞게 되면
정말정말 아프다.
'여자'라서 주춤하는 걸 설득했다가 뒷감당을 내가 해야했던 일도 있었고
출신지역을 가지고 그럼 안되지 하고 주장하다
그 당사자에게 제대로 뒷통수 맞은 일도 있었다.
물론 잘 안다. 내 뒷통수를 딱 한번, 그 사람에게만 얻어맞은 건 아니라는 거.
이
지방, 저 도시 사람에게 이래저래 여러번 맞아 봤다.
그럼에도 편들다가 그 편한테 맞으면 정말 아프다. 맞아서 아픈 게 아니라 자청해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아픈거다.
이번에 아들 교통사고 가해자가 아줌마였다.
차라리 아저씨였다면 맘놓고 욕이라도
해줬을텐데.
그동안 차 몰고 다니면서 누가 김여사 운운하냐고 그리 거품물고 화만 내지 않았어도 덜 아팠을텐데.
차를 몰고 길에 나서면
김여사 보담 김사장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맨날 김여사 타령이니 억울할 수 밖에.
'엄마, 것봐! 맨날 김여사 욕한다고 뭐라 하더니
김여사한테 당했잖아' 아들의 툴툴거리는 소리에 할 말이 없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앞집 아저씨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하여튼 여자들이란~~ 운전하는 꼴을 보면 속이 터져서~~" 하면서 여자 앞에서 막 화를 내셨다.
나름 우리 위로하는 말을 해주시는
거라 그냥 가만 있었다.
사고나고 며칠 뒤 가해자 아줌마는 전화로 자기가 너무 아파서 문병을 갈 수가 없다고 끙끙거렸다.
저
때문에 치료받고 있는 아들 앞에서 그런 전화를 받으니 한편 울화가 확 치밀어 "니가 더 아프냐 내 아이가 더 아프냐' 하고 싶었지만 한편 이
아줌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짐작이 가 그냥 됐다 하고 끊었다.
이런 일을 당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니가 주장하는 걸 진짜
감당할 수 있는가 하고 누가 시험해보는 거 같다는.
그리고는 편견이라는 게 그냥 생긴 건 아니지 않나? 일상에서 잡힌 현상의 누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편견을 편견으로만 보는 것도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서 이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혼자 끙끙 괴로워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잘난 척 한 것을 물리기는 좀 싫다.
P.S
'육십이 넘은 아줌마가 뭐하러 새삼스레 차는 끌고 나와서~~' 라는 내 소신불명의 투덜투덜에 이제 좀 평온을 찾은 아들 녀석이
그랬다.
"에이~~ 육십이 넘은 아줌마도 필요하면 차를 몰아야지, 그렇지만 그렇게 몰면 안된다는 거지"
그래도 그동안 떠들었던 내
말이 효과가 좀 있는 건가? 하고 솔깃해 혼자 흐믓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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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314 2013/02/24
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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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이 인제는 저희들 보다 속이 깊군요.
그나 저나 아드님이 큰부상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고.... 인제는
더이상 아무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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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314 2013/02/24
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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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짐작 하셨겠지만....저도 실은 경상도 남자랍니다. 서울내기로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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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3/02/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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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어른 노릇을 하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ㅎㅎ 엄마가 우왕좌왕 갈짓자로 걸으면 딴은 균형잡는 폼 내느라
그러는 게지요.
퀸님께서 달리 마나님께 혼나시겠어요. 전 알고 있었지롱요~~~ 위장도 소용없으십니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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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쉬모드 2013/02/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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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사람같지 않은 이들 많아요. 대체 나이들은 어디로 먹은건지....저런 것들은 그저 저 같은 독종만나서 오지게 당해봐야
사람될겁니다. 사채꾼 우시지마의 명대사 "아주 죽죽 빨아먹어주마"
저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가해자가 너무 안된 처지의
사람이었어요,진심으로 사과하고 하도 딱해서 그냥 넘어갔죠,그전에는 이게 완전 인간말종이라 제가 할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아주
사회적생매장을 시켜버리기 전까지 갔더나 그 부모가 와서 읍소하길래 무마해주고.....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일단 사람이 다친건데 고개
숙이고 사과하면 다 잘될일을 왜 그렇게 이기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통원치료중이겠죠? 운신할 여력되면 같이 좋은곳에 나들이라도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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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3/02/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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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가봐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더 통하는 세상이라고들 여기는
지.ㅎㅎ 모드님 딱 보면 에구구 조심해야지 할텐데 어쩌자고 그런 말종 짓을 했을라나요. 그 부모님들도 딱하네요.
엊그제
아이 졸업식이라 오랜만에 나갔었는데 어제 종일 끙끙거리네요. 엄살은~~ 하면서도 속은 쓰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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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2013/02/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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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편견으로만 보는 것도 편견이 아닌가? ---> 순간 꽝~~~ 새삼... 귀를 순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오늘 날씨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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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3/03/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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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변명하려는 얘기겠지요.ㅎㅎ 지금도 귀 순하신 것 같은데 더?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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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2013/03/0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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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아직 제가 버럭~대거나 욕하는 걸 못보셔서 그래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랍니다. 아무래도 멀린님께선 절 순한
사람으로만 보고싶으신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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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3/03/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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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오후에님도 저 버럭!!! 웩웩!!! 하는 거 못 보셨잖아요. 그럼에도 제가 순~~한 사람이다 하진
않으시잖아요.
그리고 착각이건 아니건 어딘가 그런 친구가 있다 하면 좀 든든하지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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