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낙서장

한계

by merlyn 2013. 11. 13.



 
아들 녀석 침대 커버를 바로 잡으려고 이불을 들치는데 뭐가 손에 박힌다. 





이런,  또  야구공이!

 뒤를 돌아다보면



엎드려 방 닦다가 저 빳따가 넘어지는 바람에 몇 번 맞아도 봤다.
 
아들아이의 첫번째 꿈은 버스운전사.
제대로 머리가 굳기 시작한 후로는 무조건 야구선수였다.
서너살 무렵 남편이 사다 준 플라스틱 야구 배트와 비닐 글러브로 죽자고 연습을 했다.
 



사진으론 안 보이지만 이십 여년 묵은 비닐 글러브는 너덜너덜 거의 삭았다
 
해가 져서 날이 어두운데도 공이 잘 보인다고 억지를 부리며 아파트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고 배트를 휘두르던 녀석 때문에
남편은 머리를 쩔래쩔래 흔들면서도 불평 안 하고 코치 역할을 해냈다.
그뿐이랴.
깜깜해지고 나면 종이를 조그맣게 뭉쳐 공을 만들어 집안에서 까지 던지고 받아치곤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우연히 이웃 동네에 클럽 야구 팀이 있다는 걸 듣고 연습장에 아일 데려갔다.
집에서 전철로 대 여섯 정거장 떨어진 공원에서 꽤 많은 아이들이 연습하고 있었고
리틀야구 경기에도 정식으로 출전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반가워 당장 가입을 시켰다.
신이 난 아들 녀석은 혼자 전철을 타고 부지런히 연습을 다녔고 유니폼을 맞추지 못해
남의 옷을 빌려 입었지만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데
그 경기라는 것에 부푼 마음으로 갔는데.
 
전부 초등학생이고 그 중엔 3, 4학년 꼬마들도 있었는데 엄마는 물론 아빠들 까지 죄 따라 온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경기 내내 그 아빠들은 무슨 목숨 걸려 있는 중요한 시합에 온 마냥 애들에게 소릴 질러댔다.
못 쳤다고, 공을 놓쳤다고, 못 던졌다고.

정작 감독이라는 사람은 뒷짐지고 모른 체하고 딴 전인데.


미국 영화에서 보던 화기애애하게 격려하는 분위기를 상상한 것 까진 아니더라도
그렇게 어린 애들한테 죽자고 욕을 해대는 부모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지레 겁이 나 움추러 들었다.
 
경기는 졌고 아이들은 아빠들에게 욕 먹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기죽은 채로 그날 일정이 끝났다.
돌아오는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는 지 모른다.
 
그 다음날,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원래 회비가 7만원이지만 그걸로는 운영이 어려워 더 내야 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여분의 회비에다가 이래저래 돈이 들어가니 좀 더 내란다.
좀 이상하다 했지만 에잇, 애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따지기도 그래서 그러마 했다.
그런데 이번엔 경기 끝나고 회식을 하니까 회식비로 더 내야한단다.
무슨 회식을 하냐고 물었더니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댔다.
부모들도 같이 가고 술도 하냐니까 그런단다.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애 얼굴을 떠올려 참아야지 하고는 그럼 이걸로 끝이냐니까 그렇단다. 결과, 14만원.


그런데 그 다음날 이번엔 어떤 여자가 전화를 했다.
어제 감독이 말을 못했는데 감독비가 너무 박해서 2만원씩 더 내야 한다고.
실례지만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감독 아내라고 했다.
팀 운영을 돕고 있다고.

알았다고 하고는 저녁에 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야구클럽에 이 달만 나가고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아이에게 어디까지 말을 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름 설득하느라 설명을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돈 얘길 한 것 같진 않다.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용도와 그 이상한 구실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부모들이 끼어들어 욕하고 술잔치로 끝내는 모양새가 견딜 수 없었는데
그 내용을 아이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을 거다.
아들아이는 별 다르게 싫다 소릴 하지 않고 한 달만에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과 야구팀에서 열심히 뛰었고
졸업하고는 선배 회사 사회인 야구 팀에 끼어 들어가 열혈 선수로 활약 중이다.


돈 만원에도 달달 떠는 녀석이 비싼 글러브가 중고 시장에 나오면 끙끙 앓다가 사기도 하고
 졸업하면서 과 야구팀에 배트를 사주는 대견한 일도 하고, 
사회인 야구팀 연회비 십 여만원을 아낌없이 송금하는 걸 보면서
어릴 적의 야구 사랑이 진짜였구나 감탄하곤 한다.
 
그렇지만 내 깊은 속은 몹시 아프다.
서로 말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때 아이가 그 클럽에 나가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 지 잘 알았기 때문에
항상 그 일을 다시 저울 위에 올려놓고 재어 보곤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녀석이 다른 애길 하던 중에 그 얘기를 슬쩍 했다.
싫었다, 괜찮았다 가 아니라 '엄마가 그만두라 해서 암말 않고 그만뒀잖아'
난 묻지 못했다. 싫었니?  엄마가 괜히 그랬나?  차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부모들이 그렇게 험하게 행동한 건 대학입학 때문이란다.
초등학교에서 잘 해야 야구 잘하는 중학교에 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대학까지 연결이 된다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아이의 세계에 엄마 아빠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참 힘든 얘기다.


아이 초등학교 때 촌지를 바라는 담임을 외면하는 나를 보고 제부가 심각하게 물었었다.
"교실에서 담임하고 마주하는 사람은 처형이 아닌데 왜 처형의 판단을 내세웁니까?"


공부를 아주 잘했던 제부는 항상 반장에 뽑혔는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담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나중엔 '넌 그 흔한 빗자루 몽댕이도 하나 못 사오냐' 하는 모욕적인 소리까지 들었다고.
그때 난 '그럼 부모의 가치관은 무슨 소용있냐'고 대답했는데
나 자신도 학교에서 당하는 아이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에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이만큼의 세월이 지났어도 난 야구 클럽에서 겪었던 그 일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런 분위기 속에 내 아이를 두번 다시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가치관 때문에, 나의 불쾌감 때문에, 나의 신념 때문에
아이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쉬움을 남겼다는 게 정말 가슴 아프다. 그래서 많이 후회를 한다.
내가 싫은 걸 피하는 대신 아이가 온전히 겪어내야 했으니.
 
이제 아들 녀석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의 몫은 남아있고 난 여전히 그 한계를 구분짓기가 힘이 든다.
부디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queen314 2013/11/20 15:41
  제 생각에는 멀린님이 잘하신 처사 같습니다.
아드님이 계속해서 그 클럽에 있었더라면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멀린님이 좀 더 좋은 지도자와 학부모를 가진 야구 클럽을 찾아서 했다면 모르거니와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제 추측이고요)....

아이들을 기르는데는 부모의 노력과 정성도 중요하지만...선생님 운이 더 결정적입니다.

저도 큰아이와 작은 아이 기르면서 돌이켜 보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많았는지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참 아슬 아슬한 순간 (결국은 그것이 대학 입학과 관련지어 졌었지요.)에 어쩔 수 없었던 (대학 진학을 위한 고려를 무시한)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으로 정말 운이 좋았던 거지요.
(아니면 아이엄마 기도발이 먹힌건지....)  
  queen314 2013/11/20 16:08
  장차 아이가 성장 했을 때 "신분 상승을 위한 공부나 예체능 능력 발휘"를 위한 길을 개척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가 "신분 상승을 위한 공부나 예체능 능력 발휘"하기 위하여 뛰어가다가...지나친경쟁 에서 삐뚤어진 가치관을 갖게 되거나 좌절할 때 바로잡아 주고 격려하는 것이 부모가 할일 인것 같습니다.

소망은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지....부모가 달성해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친구들과 선생님 운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컸으니 아드님이 반듯한 분이 되셨고.....
그래서 아드님은 그런 멀린님 마음을 다 알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
 
  queen314 2013/11/20 16:20
  저는 운동에 컴플랙스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운동과 관련한 과외활동(수영, 축구 교실)을 많이 요구했고...
물론 운동 선수가 되는 것을 바란건 아니지만 운동을 통한 야성과 ..사회성...몸이 튼튼하게 만드는 습관과 흥미는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거죠.
따라서 거기에 돈도 제법 들였지만....아이들은 그쪽으로 흥미를 붙이지 못하더만요.
그래서 인지...큰놈이든 작은 놈이든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진 않구요.

아이들은 부모의 소망과 항상 어긋나는 모양입니다.
고슴도치 부모가 아무리 잘 해주지 못했어도 그래도 반듯하게 자라준 자식에게 고마운 생각이 드는게지요.
 
  merlin 2013/11/21 15:14
  뜻이 좋으면 방법도 역시 좋은 걸 택해야 좋은 뜻이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드문드문 아이 입을 통해 예전의 저를 보면 의욕은 충만했지만 서투르고 보는 폭이 참 좁았구나 실감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을 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그만큼 부지런히 대안도 찾고 아이의 의욕에 맞춰가야하는데 전 그런 면에서 빵점이었지요.ㅎㅎ
아이에게 독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느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내어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소망은 항상 부모의 그것과 어긋나는 모양이란 말씀에 웃었습니다.
저도 그랬고 제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고.ㅎㅎ
그저 엄마 역시 고민하고 실수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엄마도 잘 알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거지요.

퀸님 뵐 때마다 아드님들 미래에 참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느끼면서 저 자신이 많이 아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황새울 2013/11/29 01:53
  ㅋㅋㅋ 아드님이 야구 정말 좋아하나보네요. 좋아하는게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거죠. 멀린님 글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 졸업하고 서울예전 문창과가 가고 싶어서 이래저래 알아봤더만 그 당시 등록금만 300만원이 넘더군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모교 국문학과 대학원에 전화해봤더니 그냥 오래요. 시험도 있지만 교수님이 잘 알아서 해줄거라면서 이건 뭥미 이랬었죠. 결국 아무데도 가지 못했답니다. 내가 이과가 아니었고 내가 공대가 아니었더라면 하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들을 다 털었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일등이 되어서 돈과 명예를 얻는 것보다도. 한번은 klpg 갤러리에 간 적이 있는데 프로골퍼의 캐디가 그녀의 아버지인 것을 봤을 때 참 애잔하더군요. 그녀는 왜 프로골퍼의 길을 택했을까? 스스로 택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로골퍼가 1년에 5000만원 정도를 쓴다고 하더군요. 대회참가와 그에 따른 소요경비 그리고 대회를 위한 훈련 등. 동생과 갤러리보고 잠뽕 먹으러 갔다가 잠뽕 먹으로 온 프로골퍼 보면서도 애잔하더군요. 그 어머니와 캐디를 한 남동생, 3일간 경기가 치러지는데 5시간 정도 뛰니 배가 고파도 한참 고파서인지 잠뽕에 공기밥을 말아 달라고 얘기하던 앳되 보이는 그 프로골퍼.  
  황새울 2013/11/29 02:01
  아참... 글이 참 좋아요 ^^  
  merlin 2013/11/29 18:16
  맞습니다. 진짜로 그래요. 좋아하는 게 있으면 행복하지요.
아들 놈 말시키려면 야구에 대해 물어보면 된답니다. 선수들이면 팀이며 온갖 규칙까지~~ 수다 삼매경이예요.
젊은 아이들이 좀처럼 안 입는 내복을 열심히 입고 다니는 것도 야구를 오래하려고 몸 간수 잘 하느라 그런거구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찔리겠어요. 아예 눈 꾹 감고 시켰으면 저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졌을텐데 못 이룬 꿈으로 남아버렸으니. ㅠ.ㅠ
확실하지도 않은 딸의 미래를 믿으며 저렇게 캐디도 하고 부모 노릇도 하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 맞는건가 싶기도 하고. 어쩃든 실천하는 부모라도 되는 거잖아요.
물론 제 아들은 야구선수로 나설 싫력은 아닌 거 같은데도 뒷통수가 땡기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역시 그런 꿈이 있으셨구나.ㅎㅎㅎ
종종 감상적인 글이 반짝반짝하게 올라오는 걸 보고 혹시나 했었지요.
꼭 문창과 나와야 글 잘 쓰나요? 지금이라도 시나 소설 써보세요.
사실 저도 꿈이 글로 밥 벌어먹는거였는데 ㅠ.ㅠ
이젠 지나온 세월 속에 다 흩어져 흔적도 없어요.
제 꿈까지 짊어지시고 영차영차 나아가시길.^^ 진짜루요!!!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매가 아니라고!  (0) 2013.11.30
겨울이여 오라~~~~  (0) 2013.11.23
햇살이 반짝  (0) 2013.10.31
멀린 달리다  (0) 2013.10.24
기억  (0) 201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