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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햇살이 반짝

by merlyn 2013. 10. 31.



남편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래처로 출근한다더니 데려다 줬음 했다.
남편 운전면허증은 장롱 속에 있다.
그러잖아도 바빠 죽겠는데 그냥 택시 타고 가면 회사에서 다 내주는걸
내 기름값은 안 주면서 투덜투덜~~
설겆이 하다말고 겉 옷만 걸쳐입고 차를 몰았다.
 
서부 간선에 환장한 내비 때문에 뻔히 코앞에 있는 곳을 둘러둘러.
20분이면 될 거리를 40분이나 걸려 겨우 도착해 남편을 내려주고 돌아섰는데
길은 또 막히고 진입로를 놓쳐 다시 빙빙 돌게 되어버렸네.
 
꾸욱 눌러 참았던 울화가 마구 터져 나왔다.
그냥 택시타고 가면 좋았잖아, 운전은 죽어라 안 하려고 하면서 옆에 앉아 가는 건 왜 이리 좋아해.
금쪽같은 한 시간 그냥 날렸네, 집에 가자마자 또 뛰어야되잖아. 버럭버럭버럭~~~
짜증이 나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 김창완씨 음성에 딱 멈췄다.
전엔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꼰대 느낌이 나서 잘 안 들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이병우씨 목소리가 흘러 나오자나자나.
두 사람의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오는 그의 연주 카바티나.
 
아~~~~ 얼마나 좋은 지.
길 양쪽의 물든 나무를 바라보며 그냥그냥 들었다.
남편을 향한 울화도, 바쁜 일상도, 고집쟁이 내비도 다 잊어버리고.


이 길에 안 섰더라면 이 좋은 순간을 못 만났겠지.
 
산다는 건 이런 거다.
화나는 일에 치이나 하면 어느새 햇살이 반짝! 하는 순간을 보게 되는 것.
 



우리 동네 단풍
 
 

P.S 정말 좋은 연주라 여기 올려 들려 드리고 싶었는데 유튜브까지 죄 뒤져도 없네요.
꿩 대신 닭은 하기 싫으니 그냥 상상하시길. 


옮기다 찾았음
 

 
 




  꽃 청 2013/11/01 12:36
  환장한 내비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과 그 일당들?이 초상집에 갔는디,
초행길이고, 환장한 내비들이 막 선을 뵌 때였지요.
홍성 어딘가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디, 환장한 내비는 덩그러니 논이 사방에 있는 농로로 인도했대윰.
하여..그들은 간만에 별을 봤다나뭐래나..ㅎ
그러게요...화가 치밀어도 햇살이나 달빛이나 하다못해 눈꼽만한 전화기에 빨간빛이 점등...그류그류 산다는 거이..^^;  
  merlin 2013/11/01 17:04
  눈꼽만한 전화기에 빨간빛이 점등.

아, 실감나는 말이네요. 그야말로 이 풍진 세상에 고 정도 빛만 있어도 어찌어찌 살아가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조그만 것에도 와~~~ 요만한 변화에도 으쌰으쌰! 하려고 노력하는데 참 쉽지 않네요.
그래도 어째요. 씩씩하게 살아야지요. ㅠ.ㅠ 속으면서 속아주면서~~  
  오후에 2013/11/01 16:19
  '이 길에 안 섰더라면 이 좋은 순간을 못 만났겠지' ----> 문제는 좋은 순간이 길 막힘에 비해 짧다는 거죠. ㅎㅎ

꽃청님 말씀대로 그류그류 사는건가 봅니다.

^ ^  
  merlin 2013/11/01 17:08
  ㅎㅎ
맞아요. 아주 짧지요.
그래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받아 원기충천했다고 굳게 믿으며 또 달리는 거지요.
그류그류~~하고 끄덕끄덕하면서 말입니다.

근데 저 순간은 정말 좋았답니다.^^
 
  isshe° 2013/11/05 23:16
  뱃살이 반짝
으로 읽고 주의를 얼른 살피 후 오동통한 제 뱃살 후다닥 가렸습니다~  
  merlin 2013/11/07 22:33
  우하하하하~~~~~~~
isshe님께서 뱃살을 후다닥 가리셨다니! 뭔 말씀을~~
늘씬하셨던 자태가 지금도 눈에 선한대요.
뱃살하면 바로 제가 후다닥 가려야 하지만 그게 감춰지지도 않네요. ㅠ.ㅠ
잘 지내시지요? 독일의 가을은 우울하다 하는데 isshe님은 항상 반짝반짝 하시는 거 같습니다.  
  모악 2013/11/07 17:34
  한국은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고 뉴스에 나오더군요.

내가 사는 곳은 사계절이 있기는 있는데
한국 처럼 확연 하지 않아서...
단풍 이나 눈 구경을 하려면 멀리 남섬 여행 이나 해야 가능 하답니다.
 
  merlin 2013/11/07 22:36
  여긴 나무가 좀 있는 곳은 죄 영화 속 한 장면 같답니다.
올해 단풍이 참 곱네요. 덕분에 멀리 갈 생각도 잊고 매일 집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엔 혹한이라 가끔 모악님 계신 나라처럼 좀 원만한(?) 곳에 가서 살고 싶다 하는데
단풍 들거나 흰눈이 잔뜩 내리면 또 여기가 좋아라 하게 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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