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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60점!

by merlyn 2009. 8. 3.


한겨레 블로그에서



엊그제 저녁 남편이랑 테레비를 보고 있는 데
배경음악으로 Five hundred miles가 흘러 나왔다.
난 그냥 웃었는데 남편은 약 잘못 먹은 뱀 마냥 비틀거리면서 구불구불 다른 방으로 도망을 갔다. ㅋㅋ
 
신혼 때 남편은 자꾸 나더러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그런데 난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무지 싫어한다. 물론 내가 노래를 못 부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노래 부르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래를 안 부르느냐? 하면 것도 아니다. 혼자있을 때, 특히 일할 때는 항상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온갖 노래를 다 따라 부르면서 원맨쇼를 해댄다. 그렇지만 남들 앞에선 사양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자꾸 노랠 불러보라는 거다. 싫다고 죽어도 안 부른다고 했는데도.
어느 고즈녁한 저녁,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며 보다가 무심히 바로 이 노래 '500 마일즈'를 부르기 시작했다.
곁에서 남편이 귀를 쫑긋하는 걸 알았지만 나온 노랠 멈추는 것도 그래서 계속 불렀다.
다 부르고 나니 남편 하는 소리
 
"60점!"
"?????????"
"것도 잘 준거다"
 
나중에 제 정신이 돌아 올 만큼 세월이 지난 후에야 남편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햇는 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노래만 나오면 저렇게 멀쩡하던 등뼈가 내려앉아
병든 뱀이 되어버리는 거다.
 
더 기막혔던 것은 자신은 잘 부른다고 자랑스러워 하던 남편 노래 실력이
완전 박자 땡! 음정 땡! 이라는 거.
심심하면 말도 안되는 노랠 부르면서 '나 잘 하지? 가수보다 잘 하지?' 할 때마다
창피주기가 그래서 응 잘해 했더니 진짠 줄 알고~~
요즘은 7080 같은 데서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다가도 내 눈치를 슬금슬금본다. 
틀리면 내가 가차없이 땡! 해버리니까.ㅋㅋ 
 
 작가 최인호가 신혼 때 집들이를 하는 데 흔히 그러듯 친구들이 새색시더러 노래를 하라고 난리더란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없어져 찾았더니 연탄광 속에 숨어있더라고. 죽어도 안하겠다고 버티는 아내를 보며 노래를 진짜 못하는 구나 싶어 자신이 대신 쌩쇼를 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그런데 나중에 아기를 낳고나서 처음으로 아내의 노래를 들었단다.
음정, 박자 잘 맞게 낭랑하게 잘 부르는 아내의 자장가를~~

이런 상황까지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60점이 뭬야 대체!
   
죄값을 치루는 길을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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