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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장돌이 장가들다

by merlyn 2014. 11. 19.



얼마전 주말 저녁
아들의 이십년 지기 절친 장돌이를 마트 2층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랑 둘이 다가오더니
"아줌마는~~~ 이러시면  어떡해요. 그걸 물리는 법이 어딨어요"하고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거렸다.
"인석아, 아니 이젠 그렇게 부르면 안되겠네. 어른인데"
키들키들거리는 녀석한테 마음 상하지 않게 변명을 했다.
아줌마는 입이 촌스러워 그런 비싼 양주 먹어도 맛을 몰라, 아저씨도 마찬가지고.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20만원이 넘는 양주를 사오냐 했더니
비싼 걸로 평생에 딱 한번 선물하고 때울라 그랬잖아요 하며 실실 웃는다.
 
장돌이(물론 가짜이름이다, 진짜 이름은 세련됐다. ㅋㅋ) 는 내 아들 초등학교 친구다.
중학교까지 한 학교 다닌데다 집도 같은 아파트라 둘은 허구헌 날 붙어다녔고
똑같이 형제없는 외동이라 장돌이가 방학에 시골 할머니댁에 갈 때도 같이 묻어갔고 시험 끝나면 장돌이네서
밤새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장돌이 엄마가 일을 하느라 집에 없으니 그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깜깜할 때까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며 놀았다.
고등학교부터 학교도 갈라지고 집도 이사를 해 자주 못 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 둘은 여전히 절친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장돌이에게 고민이 생겨 힘들어 한다는 소릴 듣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어느날 우리집에 와 아들 아이랑 방에 틀어박혀있다 나와 앉은 밥상에서 그 문제를 하소연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가 나서기 힘든 문제라 조심스레 충고해주고 달랬는데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 집에 가기 싫은데 여기서 있으면 안되냐 해서, 이 녀석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집에 들어가 하고 그 큰 등짝을 (한 대 때리는 대신) 그냥 쓸어준 일도 있었다.
가슴이 참 많이 아팠지만 그 일은 내가 녀석을 끌어 안고 있으면 안되는 거라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도 아들아이와 딱 일주일 차이나게 갔는데 자긴 일산 쯤에 배치받을 것 같다면서 그러니 아줌마 일산 지나가는 길 있음 들르세요 하고 너스레를 떨더니 어느 날 수신자 부담으로 받은 전화로 "여기 최전방 지피예요. 아줌마~~~ "하고 처량한 목소리를 해서 웃게도 하고 눈물나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 '미안하다 장돌아. 아줌마 이름이 별로 여자 같지않아 부대원들이 부러워도 않겠다'고 손편지를 써보냈는데~~
 
둘 다 제대하고 얼마 후엔 간만에 우리가족이 야구를 보러갔는데 막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바로 앞자리에 커플 한 쌍이 들어왔다. 남편더러 "쟤 장돌이하고 참 비슷하게 생겼지?" 했더니 남편이 그러네, 하곤 곁에 아들더러 같은 얘길 했는데 아들이 걔를 탁 치면서 어이 장돌이 하는 거 아닌가!
나중에 들었더니 소개로 만나 닷새만에 같이 야구장에 갔는데 그 넓은 야구장에서 딱 바로 우리 앞자리에 앉는 바람에 우리 온가족과 인사를 하게 된 거였다. 뒷통수가 얼마나 따가왔을까! 하하하~~ (물론 남편과 난 6회까지만 보고 나왔다)
 
그 장돌이가 지난 달 말에 그날 야구장에 같이 왔던 예쁜 처자랑 결혼을 했다. 만난 지 5년만에.
그동안 종종 전해들은 장돌이 소식 안에 여자친구가 사정이 어려워 대학엘 못갔는데 장돌이가 물심양면 도와주면서 공부도 더 하게하고, 졸업한 후 취업하는 데도 같이 애를 썼다는 얘기가 있어. 이 녀석 제법인데~~ 했었다.
 
결혼하기 이틀 전 그 바쁜 시간에 우리집에 인사를 왔다. 전셋집이 이사하는 날이라 뒷정리 때문에 혼자 왔다면서. 
그리고 그간 사연을 자세히 들었다.
처가될 집 형편이 어려워 결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가구며 집에서 쓸 전자제품도 대부분 장돌이가 친척집 수소문해 안쓰는 거 실어나르고 친구들이 선물해주기도 해서 둘이 마련한 건 침대 하나뿐이라고 자랑을 했다. 청첩장을 내놓으면서 이것도 제일 싼 거예요. 500원! 한다.
집도 회사 근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게 골라 전세 대출받고 거의 제 힘으로 얻었단다.
엄마가 사돈 형편을 대부분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지만 그래도 나중엔 정말 섭섭하셔서 내색을 하셨고 색시가 많이 미안해 하면서 자기한테 더 잘하려고 해서 오히려 속상하다는 장돌이를 보며 참 대견하다, 정말 잘 자랐다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장가보내는 데 엄마 그러시는 거 당연하니까 섭섭해 하지마라 했더니 에이~~그럼요, 괜찮아요 한다.
예전에 너 지금 앉은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면서 집에 안간다 했던 생각나니? 하니까 그땐 제가 철이 없었지요 하면서 또 싱글싱글이다.
 
영악하기로 몇 십살 더 먹은 우리보다 더 하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담에 입을 못 다문 일이 요 근래 여러번이었는데 한결같은 장돌이의 순정에 굳었던 내 마음이 얼얼해졌다. 엄마 돕는다고 쓰레기들고 나와 버리던 어린 녀석의 모습이 황혼녁을 배경으로 내게 새겨져 있는데 어느새 저리 잘 자라 장가를 가는구나.
 
혼례날,  어여쁜 신부 곁에서 여전히 싱글벙글인 새신랑을 바라보자니 눈물이 고인다. 아이구 주책이야, 내가 왜 야단이래. 
여전히 곱기만한 장돌이 엄마한테 얼마나 좋으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정말 좋아요 하고 속삭이신다. ㅎㅎㅎ
참 좋은 날이었다.
 
아! 위에 물렀다는 양주 얘기를 다 안 했다.
이 녀석 왔다 간 다음에 선물로 들고 온 양주를 봤더니 이게 우리 집 옆 마트에서 제일로 비싼 거였다.
남편도 나도 이건 도저히 받을 수 없다 싶어 신혼여행 다녀오고 좀 지나 본가에 뭘 가질러 온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들더러 불러내라고 해서 끌고 가 물른 거다.
다른 거 사려면 또 고민해야잖아요 하고 계속 툴툴거리는 녀석 더러 아니, 새신랑 더러 그럼 맛있는 커피 사거라 하고 얻어먹고 왔다.ㅎㅎㅎ
 
장돌아, 네 소원대로 예쁜 색시랑 아이 셋 낳고 알콩달콩 잘 살아라~~~
   
  

  꽃 청 2014/11/20 23:16
  저는 결혼 후에 넘의 예식장맘 가믄...꺼이꺼이 울어서 쫒겨날 지경여유.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만 보믄 왜케 눈물이 펑펑 나는지...막내 남동생 결혼식에선 이모들이 제 등을 때렸다니까요  
  merlin 2014/11/21 20:18
 

하하하하하~~~~
음, 웨딩드레스 입은 예쁜 신부의 앞날을 생각하니. ㅠ.ㅠ 이러시는 거지요?ㅋㅋㅋ

전 제 막내 남동생 결혼하는 날 만세 삼창 불렀습니다.
그노무 동생이 서른 여섯까지 결혼도 안 하고 어찌나 성가스럽게 굴던지.
맨날 이불호청 꿰매주고 청소해주러 출장다녔지요.
지금도 올케 보면 막 예뻐요. 제 짐 대신 짊어졌으니.  

  나리타산 2014/11/22 08:51
  정말 장한 청년입니당 ~
딸가진 부모로써 어데 저런 청년 엄나~~~
이런생각이 먼저드네요^^
내 딸 모자라는데 남의 아들 잘키운 거 부러워하고 탐내다뉘~
그래도 부럽네용 잘키운 아들! ㅎ 
 
  merlin 2014/11/23 16:37
  모자라다시니~~ ㅠ.ㅠ.
으젓하고 반듯하게 키우신 따님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요.
이젠 다 큰 티가 마구마구 날 나이가 되었네요. 참 궁금합니다.
친구 딸들을 보면 나이 먹은 만큼 마음도 잘 크더만 아들 녀석은 어찌 그리 속이 없는 지,
엄마한텐 책 잡히지 않게 색시 데려오느라 고군분투한 아들 친구 아이를 보니
내 아들은 언제 저리 철이 들라나 한숨만 푹푹 나왔답니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잘 지내시지요?
바쁘시겠지만 종종 소식 전해주세요.^^  
  디페쉬모드 2014/11/25 22:43
  흐뭇해지는 사연이군요.
친아들과 다름 없는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축복해주니 잘 살겁니다.

전 결혼전까지 몇번 갔는데 영 팔자가 아니라서리....  
  merlin 2014/11/26 13:50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 같았던 녀석이라 더 마음이 쓰였어요.
이십 년 한결 같았으니 믿음직하게 잘 살거예요.

한 두번도 아니고 몇번이나 그러셨어요?
왜 그러셨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엄한 팔자 타령은 마시고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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