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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긴 하루

by merlyn 2009. 4. 24.




정말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는 또 이사를 하셨다.
아~~ 요양병원이란.
벌써 며칠을 혈변을 보고 계시는데 이번엔 수혈을 두 팩이나 받으시고도
혈액수치가 6.3 , 정상이 14고 위험수위가 6이라는데.
그런데도 내과의사라는 놈 한다는 소리가 왜 이러는 지 자긴 모르겠단다.
어떤 치료를 하실 꺼냐고 올케가 닥달하니 한시라도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란다.
자기네서는 내시경을 할 수가 없어 원인규명이 안된다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그렇게 크고 멀쩡한 병원에서 내시경을 못한다는 게 뭔 소린가
웬만한 개인병원서도 다 하는 것을 했다.
 
아버지 담당 신경과 의사를 만나니 묘한 소릴한다.
내시경 시설은 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담당내과 선생님께선 외래 환자에게만 내시경을 하고 입원환자들에겐
하지 않으므로 여기 병원에서는 아버지께 약 처방만을 해줄 수가 있단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구체적인 치료를 하고 싶으면 큰 병원으로 가고
각오를 하고 계신 거면 그냥 여기서 약으로 대처해보자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부랴부랴 짐을 꾸려 구급차에 올라타 아버지 곁에 앉으니 눈물이 쏟아졌다.
 
전에 있던 병원 응급실.
아버지가 심폐소생술을 받던 그 자리로 돌아가 서니
얼마나 얼마나 마음이 떨리던지.
온갖 서류에 서명하고 온갖 겁나는 소릴 숨 꾹죽이며 들어내고
내시경실 밖에서 온 가족이 기다렸다.
보호자 들어오라고 해 가보니 내시경 검사기 화면에
온통 궤양이 생긴 아버지 위가 보였다.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을까.
말 한마디 못하시고.
저 지경이 되셨는데 요양병원 내과전문의란 사람은 왜 혈변을 보시는 지 모르겠단다.
모르겠지, 점쟁이도 아닌데 겉을 보고 어찌 속을 어찌 알랴만은
그러면 저나 나나지. 나는 모르지만 의사인 저는 알아야하지 않나.
비싼 기계는 왜 사다두었으며 내과전문의는 어째 땄는지.
 
아버진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면회시간을 기다려 다시 아버지 얼굴을 보고 돌아서 나오는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7시 50분.
막내가 '누나, 참 긴 하루였다' 한다.
그래.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병원을 옮겨야 마나 고민만도 꽤 오랜 시간 한 듯한데.
아버진 그 혹독한 검사에 혈관에 주사 바늘을 고정시키는 시술까지 받으시고
중환자실에 혼자 남으셨다.
그래서 더 길다. 이 하루가.  
 




 

 

 호주돌팔이 2009/11/20 21:10


여기 아스피린 사연이 있구만요... 찾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피린의 부작용을 의심하지 못했다면, 진짜 돌팔이입니다요.
자기가 쓰는 검의 양쪽 날을 알고 있어야쥐...
꼭 내시경 할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전에 왜 혈변이 나오는지 짐작할만 했지않나 싶네요. 

  merlin 2009/11/21 01:15
  예, 나중에 원래 담당의사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심혈관 전문의시죠, 내시경판단은 응급실에서 했고 검사는 소화기전문의가 하셨어요)
입원한 뒤에 회진 오셔서 그냥 치료했으면 됐을 일을
무슨 내시경까지 했을까 하시더군요.

응급실로 들어가 대강 검사받고 나서 내시경을 하셔야 된다고 응급실 당직의사가 말하길래 위험하지 않으냐, 꼭 받아야하냐고 물었더니 안그러면 돌아가세요 하더군요.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요양병원에서 그냥 둡시다 하는 의미가 그런 거였나 싶어 참 기막혔었지요.
나중에 꼭 내시경까지 필요없었다는 얘기에 또 한번 속상하고~~

지금보니 그때가 꽃피던 사월이었네요. 참 추운 날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맘이 추웠나봐요.
호돌이님 역시 가짜 돌팔이 맞으시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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