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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갈림길

by merlyn 2010. 4. 6.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절, 파리 지하철 역에서 프랑스 젊은이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친구더러
"자신이 믿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 하고 말했다.
바로 그때 마침 그들 곁을 지나던 독일군 장교가 권총을 꺼내들어 그 젊은이 머리에 겨누었다.
"방금 한 그따위 말을 다시 한번 더 하면 이 총으로 바로 쏴 죽여버리고 말겠다"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그 독일군 장교를 노려보면서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방금 자신이 믿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소"
독일 장교는 그 청년 이마를 겨누고 있던 총을 거두고 웃으면서 "당신은 지금 당신 말과 행동이 모순된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이요"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닌 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베르 까뮈가 즐겨 말하던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 내면이 감추고 있는 용기와 힘을 드러내 보이는 이 일화는 읽을 때마다 가슴 벅차다.
 
그러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잘나지도 않고 운도 좋아 (이런 목숨을 건 갈림길에 설 일이야 아무나 겪은 일이 아닐테고) 그야말로 나의 정신적 가치를 흔들어 놓을 선택의 위기에 처할 일 없이 살아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곤 한다. 지금껏 내가 해야 할 선택이라는 것이 만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양심에 조그만 흉터가 되거나 그저 혼자 우쭐거릴 정도의 사소한 것이었으니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도 유지하고 살고 있음을 안다.
 
그리나 또 한편으로, 저 이야기가 반대의 방향으로 이어졌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면 참으로 참담하게도 비슷한 예를 꽤 쉽게 끌어다 보여줄 수 있는 게 내가 사는 세상이다.
'청년이 내가 믿는 정신적 가치에 목숨을 걸 수 있다 확언했는데 독일 장교가 총을 겨누었고, 이내 아니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소 했다'면~~
 
난 아직 팔자가 좋아 이런 행동을 한 여러 사람들, 한 때 내게 영웅이었고 롤모델이었으나 이내 역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육두문자나 날리며 살고 있다. 난 크게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처지에 있으니.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욕지꺼리나 해대는 일도 두려워진다. 삶은 그리 수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저 입으로만 나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떠들었을 뿐 나의 신념은 남들의 공증을 받을 가치를 가진 적도 없었고 그걸 시험해보여야 할 상황에 처해 본 적도 없으니 저울 위에 놓고 흔들어보면 깃털 마냥 가벼운 것이다.
그러니 내 말도 그야말로 공염불~~
 
그럼에도 종종 대중매체에 면면을 드러내 보이는 몇몇 인사들을 보면 과거의 그들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당연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불편해지는 마음까지 되새기면서 그들이 섰던 갈림길에서의 처지를 이해해보자 하는 여유는 아직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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