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부터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옷을 파는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노점상이라고 할 것 조차 없이 좁은 인도 곁 낮은 담벼락 위에 바지 몇
벌을 늘어놓고
'5천원, 무조건 5천원~~' 하면서 팔고 있었다.
그저 무심히 쳐다보다 버스가 오면 타고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아줌마의 짧게 깍은 뒷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 바리깡으로 고등학생 머리 밀듯 선명하게 머리카락과 목덜미 사이의
경계가
드러나게 잘랐는데 여름이 다가오면서 뒷 목이 까맣게 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많이 쓰는 앞 챙이 넓은 모자를 썼지만
한 여름 태양볕에 당연히 효과 무! 일터.
점점 뜨거워져가는 날씨와 함께
처음에 하던 그저 '5천원 무조건 5천원'이
'비가 와도 5천원, 해가 떠도 5천원, 버스가
와도 5천원, 옆집 아줌마도 5천원' 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류장에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니까
난데없이 이 아줌마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 거다.
흥겨운 유행가를 부르면서도 사람들과 눈을 안
마주치려는 지 고개는 아래로 떨구고
춤을 추는데 괜히 내가 쑥스러워 얼른 버스에 올라타버리고 말았다.
내내 생각해봤다.
테레비
방송 중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보듯 특이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어 잘 팔아 보려고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너무 장사가
안되니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작정을 한 것인지.
그 이후로 두번 다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그 춤이 새삼스레 손님을 불러
들이진
못했나보다. 그런데 점점 내 마음에 짐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빨갛고 노란 선명한 색깔의 바지를 선뜻 사기도 그렇고
하늘하늘한 전혀 내 취향이 아닌 티셔츠를 사기도 그렇고.
어제 다시 정거장에 섰는데 유채색의 바지 사이로 커피색이 눈에
띄었다.
엉덩이도 펑퍼짐하고 고무줄 허리라 보기에도 딱! 편하게 생겼길래
얼른 하날 집어드니 아줌마가 반색을 한다.
넣어준
까만 봉다리를 들고 버스 올 때까지 아줌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중에 비밀 얘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춰 들려준 이야기.
"이
동네 아줌마들 웃겨요, 이런 거 사가면 무슨 자존심이라도 상하는지
'아유~~ 청소할 때 입어야겠다' 꼭 이런 소리들을 하면서 사가는 거
있지요?"
그래서 맞장구 쳐준단다. '설겆이할 때 입어도 좋아요' 하고.ㅋㅋ
집에 돌아와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니 남편이
보고는 한 소리한다.
"야~ 딱 니 스타일이다, 편안~~하니"
그렇다우, 바로 내 스타일이라오, 다른 색 보이면 하나 더
사오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