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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에서 가져옴

들뜨다

by merlyn 2013. 6. 2.



한 여름 같은 늦은 봄날 밤.
들떠오르는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눈 앞의 내 것에는 눈길도 마음도 가질 않고
멀리있는 것을 망상한다.
 
이럴 땐
도저히 마음이 어찌되지 않을 이럴 땐
그냥 뿌리를 용감히 마주할 밖에 도리가 없다.
 
네 마음을 흔들고 있는 지금의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흔들릴 수 있게 된 처지이지
널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네가 원래 원하던 것도
지금의 원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네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어쩌다 서 있게 되었을 뿐.
니 몫도
니가 꿈속에서라도 소원했던 그것도 아니다.
 
마음이 차차 식으면 몸도 식는다.
 
밤마다 공기가 내려앉을 무렵이면
내내 나를 들뜨게 하던 향기는
짐작했던 아카시아 울타리에서 나던 것이 아니라
느티나무 사이에서 엉성히 자라고 있는 찔레꽃에서 전해져온 것이다.
그처럼 네 욕망도
결국은 그것에서가 아니라
네 손 끝에서 시작된 것이다.
 
마음이 식고 몸이 식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
마냥 들떠 날 괴롭히고
주위를 괴롭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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