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영화 한 편으로
by merlyn
2014. 1. 18.
몇 년 전 우리 집 첫 번째 자동차를 사고 며칠 지나 작은 상자 하나가 배달되어 왔었다.
보낸 사람은 내가 거래했던 중고차 회사
사장님.
그 속엔 가수 김광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이 들어 있었다.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직도
여전히 내 가슴 속을 빨갛게 만드는 두 사람.
좋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던 그 선물은 지금 내 책장에 꽂혀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아직은 꺼내 읽을 용기가 없다.
보통 좋은 영화는 혼자 보러 간다.
누구랑 같이 가면 영화 끝나고 서로
얘기하느라 영화의 감동이 입으로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서.
<변호인>도 그래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남편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같이 오길 정말 잘 했다 생각했다.
둘이 근처 커피집에 그냥 하염없이 앉아 있었는데 둘이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영화 보는 내내 대체 우리가 뭔 짓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오늘 부로 니 편한 인생 니가 발로 찬기다 라는 사무장 말에 내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 안 살게 하려고 라고 송우석은 답을 했는데
지금 우리의 세상이 과연 그런가.
바로 그 시대를 통과한 우리가 어떻게 살았길래 이 시대가 돈이 바로 신이고 남이 어찌 살던
상관없고 내가 편하고 내가 더 얻을 수 있다면 정의고 양심은 물론 상식과 예의까지 밥 말아먹듯 후딱 치워버릴 만큼 천박해졌을까.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작년 부터 김광석에 관한 관심이 다시 커지면서 여러 편 연극이랑 뮤지컬이 만들어져 사람들 마음을
울렸었다. 지난 연말, 방송에 나왔던 그에 관한 다큐멘타리 마지막 부분에서 친한 친구였으면서 같이 노래했던 가수 김창기가 김광석 마지막 즈음
모든 일이 잘 안 풀려 많이 힘들어 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이리 내뱉었다.
"그때 이렇게 좀 좋아하지. 뭘
이제서야"
<변호인>이 곧 천만관객을 돌파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월요일 구백만 들었다 했으니 거의 일주일
단위로 백만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렇게 숫자 헤아리는 걸 들을 때마다 씁쓸해진다.
영화를 보는 것으로, 관객 수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우리의 죄책감과 빚을, 그리고 해야 할 뭔가를 덜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뭘 이제서야. 겨우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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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314 2014/01/19
1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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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영화를 안보는 저도 집사람과 함께 그영화를 봤답니다. 저도 천먼 중에 한사랍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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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4/01/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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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과 재미있게 보셨어요? 오랜 세월 같이 하다보니 말 하고 싶지 않을 때를 잘 알아줘서 좋더라구요. 한참 앉아
있다 남편 얼굴을 봤는데 눈 주위가 빨개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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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돌팔이 2014/01/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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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빨간지 보셨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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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4/01/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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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눈 말씀하신 거지요? 영화보고 남편이 운 게 두번째예요. 첫번째는 <태극기 휘날리며>였는데 통곡을 하는
바람에 엄청 놀랐었지요.
고향 삘이 제대로 나시네요.ㅋㅋ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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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 2014/0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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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이는 왜 일찍 죽어가지고...ㅜㅜ 죽었기에 불멸으로 남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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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4/02/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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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얄팍해 죽은 후에야 관심이 쏠리는 건지, 그게 아니라 아주 좋아했는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살아있었으면 콘서트에 갔었을텐데. 이 십년 쯤 전에 만원하는 표 값이 너무 비싸 못 간게 두고두고 속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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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 2014/02/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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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시내로 이사 왔어요. 전에 살던 집으로...ㅡ.ㅡ 집이 안팔려서리...ㅡ.,ㅡ 요즘 내집에 객들이
들쑤셔놔서리...ㅋㅋㅋ 여기와서 얘기하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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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4/02/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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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보일러가 잘 돌아가고 있는 지 궁금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 장작이 불타느라 타닥 타닥 소리내는 게 들리는 거 같아요)
다시 도시로 오셨네요.
들르는 객이 있다는 건 황새울님 글이 인기가 있다는 거겠지요?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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