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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드라마

by merlyn 2013. 7. 24.



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가 장안을 휘두르고 (SBS가 나오지 않아) 방송을 볼 수 없었던 부산에서도 유선방송으로 다들 시청을 끝냈을 무렵에야 그 내용을 전해들으신 아버진 동네 유선방송회사에 전화를 해 재방송을 해달라고 몇 번을 청하셨다.
결국 한꺼번에 몇회씩 묶어 다시 방송을 해주었고 그걸 열심히 녹화해 보신 아버진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내용도 구성도 배우들의 연기도 최고라며 감탄에 감탄을 하셨는데 그중 더더욱 아버지 마음을 끌었던 건 음악이었다. 
 
드라마 주제곡 중 '혜린의 테마'로 이름 붙여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타나 12번>을 연주한 기타리스트 오승국씨.

그 숨넘어갈 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요즘말로 '폭풍감동'을 받으신 아버진 결국 이리저리 수소문해 서울에 사시던 그 분의 연락처를 알아내셨고 딸네 오신 길에 연락해 꼭 한번 만나뵙고 싶다 청하셨다. 
 
그렇게 만나 같이 점심을 드시면서 스페인 유학이야기며 모래시계 음악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참 성실하고 진중하면서 재능이 빛나는 젊은이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시는 아버지를 참 대단하시네, 하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인연이 있었는지 친정이 서울로 이사온 후 부모님이 열심히 다니시던 동네 성당에 오승국씨가 초대받아 클래식 기타 연주회가 열리게 되었고, 아버진 솔선수범, 이웃동네에 있던 아들네며 작은 딸네까지 총출동하라고 강권하셔서 우린 모두 그날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아 기타연주를 들었다.
 
조용하고 수수한 모습의 기타리스트의 아름다운 연주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는데 그토록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시던 아버진 홀로 일어나셔서 기립 박수를 보내셨다.
 
엄마가 열심히 보시던 드라마라는 것에 그저 머리만 흔드시던 아버질 적극적인 시청자로 만들고 이름난 기타리스트에게 선뜻 다가가 인연을 맺게해준 눈부신 드라마의 피디 부음을 들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성공과 몰락이라는 게 도대체 무언가를 잠시 생각한다.
사는 게 드라마다.
 









  꽃 청 2013/07/24 13:19
  애기를 간신히 재우고 멍하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했었어요.
삶과 죽음...
요즘 그런 생각을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네요.


 
  merlin 2013/07/25 08:35
  이게 사는 건가, 제대로 살고는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마음이 자꾸 험해지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지, 원래 산다는 게 이런 건지.

스톱!
아기는 잘 크지요? 잘 자고 잘 먹고~~~ ㅎㅎ
보고 싶네요.^^
 
  오후에 2013/07/25 09:25
  좋네요.
얘기만 들었지 드라마 자체를 보지 못한지라...

그나저나 아버님의 숨은 능력이신건가요? 아님 멀린님께도 물려주신건가요? 청음의 능력은...  
  merlin 2013/07/25 10:10
  제 아들놈이 그럽니다.
이모외삼촌엄마 다 합쳐도 할아버지 재능 하나에도 어림없다구요.
전 완전 꽝입니다.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요즘의 드라마에는 댈 것도 아닌데, 참 안타깝대요.  
  미시건돌이 2013/07/25 12:37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존경을
드릴만한 분입니다. 아버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그나마
아직도 음악이나 예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않나 합니다. 
  merlin 2013/07/26 00:28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히려 아버진 음악하시는 분들을 무척 존경하셨어요.
슈베르트를 제일 사랑하셨는데 오스트리아에 있는 생가를 물어물어 찾아가셔서
전시되어 있던 생전에 쓰던 동그란 안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길 엊그제 엄마한테 들었어요.
좋은 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다른 삶을 사셨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화분2 2013/07/28 11:53
  유튜브에서 오승국씨 파일을 찾아서 몇번이나 듣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군요. 저에게 단하나의 악기를 꼽으라면
단연 클래식 기타 입니다.
ㅎㅎ 애수의 소야곡 앞부분은 저도 언젠가 시도해 봤던 명곡^^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왠지 제 가슴이 다 아련하면서
부럽기도 합니다.  
  merlin 2013/07/29 08:57
  앗! 화분님 기타치시는구나!
진짜로 부럽습니다.
참 아름다운 악기지요. 애수의 소야곡 앞부분의 그 기막힌 리듬이 아버지 손가락을 타고 나오는데
정말 놀라고 재밌었어요. 항상 클래식만 하셨는데 그 짧은 순간 젊은 시절의 모습을 훔쳐 본 것 같아서요.ㅎㅎ

아버지 얘긴 안 쓰려고 하는데 참~~~~
워낙 엮인 얘길 많이 가지셨던 분이시라 자꾸 쓰게 되버려요.
맨날 이렇게 서너 박자 늦되네요.  
  푸름살이 2013/08/03 22:16
  농촌살이 하면서 기타의 선률도 잊어버리고 삽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참으로 깊고 아늑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좋아했어요.^^  
  merlin 2013/08/04 11:20
  아버지랑의 추억은 정말 많지만 생전엔 말 안 해도 제 마음을 다 아시겠거니~~ 아니, 그런 짐작 조차 떠올리지도 못했었어요. 뒤늦게서야 그때 딱 한마디만 했었어도 하고 사는 걸요  
  바다와섬 2013/08/07 20:30
  오랫만에 한겨레가 느리지 않아 들어왔다가 마음이 훈훈해져서 돌아갑니다..  
  merlin 2013/08/08 19:47
  와!!!
오랜만이예요. 섬님~~~~~
저 요즘 섬님이 최고로 부러워요. 그 다음은 호주돌팔이님이구요.
여긴 완전 한증막 찜통입니다. 흑흑

잘 지내셨지요?
자주 뵈어요. 보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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