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모래시계>의 인기가 장안을 휘두르고 (SBS가 나오지 않아) 방송을 볼 수 없었던 부산에서도 유선방송으로 다들 시청을 끝냈을
무렵에야 그 내용을 전해들으신 아버진 동네 유선방송회사에 전화를 해 재방송을 해달라고 몇 번을 청하셨다. 결국 한꺼번에 몇회씩 묶어 다시
방송을 해주었고 그걸 열심히 녹화해 보신 아버진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내용도 구성도 배우들의 연기도 최고라며 감탄에 감탄을 하셨는데 그중
더더욱 아버지 마음을 끌었던 건 음악이었다. 드라마 주제곡 중 '혜린의 테마'로 이름 붙여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타나 12번>을 연주한 기타리스트 오승국씨.
그 숨넘어갈 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요즘말로 '폭풍감동'을
받으신 아버진 결국 이리저리 수소문해 서울에 사시던 그 분의 연락처를 알아내셨고 딸네 오신 길에 연락해 꼭 한번 만나뵙고 싶다
청하셨다. 그렇게 만나 같이 점심을 드시면서 스페인 유학이야기며 모래시계 음악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참 성실하고 진중하면서
재능이 빛나는 젊은이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시는 아버지를 참 대단하시네, 하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인연이 있었는지
친정이 서울로 이사온 후 부모님이 열심히 다니시던 동네 성당에 오승국씨가 초대받아 클래식 기타 연주회가 열리게 되었고, 아버진 솔선수범,
이웃동네에 있던 아들네며 작은 딸네까지 총출동하라고 강권하셔서 우린 모두 그날 성당 맨 앞자리에 앉아 기타연주를 들었다.
조용하고 수수한 모습의 기타리스트의 아름다운 연주에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는데 그토록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시던 아버진
홀로 일어나셔서 기립 박수를 보내셨다. 엄마가 열심히 보시던 드라마라는 것에 그저 머리만 흔드시던 아버질 적극적인 시청자로
만들고 이름난 기타리스트에게 선뜻 다가가 인연을 맺게해준 눈부신 드라마의 피디 부음을 들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성공과 몰락이라는 게 도대체
무언가를 잠시 생각한다. 사는 게 드라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히려 아버진 음악하시는 분들을 무척 존경하셨어요. 슈베르트를 제일 사랑하셨는데
오스트리아에 있는 생가를 물어물어 찾아가셔서 전시되어 있던 생전에 쓰던 동그란 안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길 엊그제 엄마한테
들었어요. 좋은 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다른 삶을 사셨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유튜브에서 오승국씨 파일을 찾아서 몇번이나 듣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군요. 저에게 단하나의 악기를
꼽으라면 단연 클래식 기타 입니다. ㅎㅎ 애수의 소야곡 앞부분은 저도 언젠가 시도해 봤던 명곡^^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실
때면 왠지 제 가슴이 다 아련하면서 부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