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호수 <호수>
by merlyn
2011. 8. 23.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온전히 휴가만을 위한 여행을 갔었던 것이~~~~~ 기억이 나질 않으니 통과!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짐 내려놓자마자 올라가 만난 산 속의 커다란 호수는
음,
참 점잖았다.
그냥 거기 내내 있었노라, 하는
표정으로.

저녁 무렵 올라간 탓에 한 바퀴 다 돌지 못하고 아쉽게 발을 돌려 내려오면서
<호수> 라는 시가 떠올랐다.
정지용 시인의 호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남편 스마트 폰으로 검색했다.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하니
눈 감을 밖에.
아니, 이 분위기는 아니다.
그보담 이형기 시인의 <호수>가 더
맞다.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세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다음날엔 아침부터 올라가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조용히 물가를 따라 걷다 느닷없이 만난 마을.
관광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토종닭 백숙, 민물매운탕 간판이 어지러히 널려있고
요란한 소릴 내고 있는 미니 바이킹, 범퍼카가 늘어 서 있는 간이 놀이동산.
ㅠ.ㅠ ㅠ.ㅠ
그냥 반만 돌걸~~
그래도 마저 돈 호숫가는 참 좋았다.

숙소 베란다로 보는 바깥 풍경이 근사해
침대를 마다하고 이불을 끌어다가 창에 딱 붙이고 누웠다.
비가 좍좍 내리는 걸 내다보다 잠이 들었는데
문득 깨어 창밖을 보니
아!
정말 곱고 고운 반달이 맑은 밤하늘에 걸려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앉아 올려다 보다가 아예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아 달구경을 했다.
어찌 다시 잠이 들었는 지 모르겠다.
p.s. 찍은 사진에 죄 얼굴이 박힌 지라 제대로 된 사진을 못 올렸습니다.
하긴 어찌 찍은들 실물만 할까요.
가서 만끽하시길.
아, 포천의 산정호수입니다.
사람이 망쳐놓은 곳이 많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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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산 2011/08/2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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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곳저곳 쏘다니다 온 사진 함 올려 볼까 뒤져 봤는데 여엉 맨얼굴에 반바지 아님 츄리닝^^ 머리에 다라이만 이고
있음,,,딱~인 아지매.ㅋㅋㅋㅋ
정말 고요함 그 자체인 호반인데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어 반달님이 한 밤중에 깨워
놀아 주는 동화속 한 장면입니당. 멀리 보이는 산도 예쁘게 자리 잡고 있네요. 좋은 여행 되신듯 해서 제기분도 상큼합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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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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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고 으악~~ 이게 웬 상늙은이의 모습이란 말인가!!! ㅠ.ㅠ 집에선 분수처럼 솟아나는 흰머리에
괴로워했는데 밝은 햇살아래 찍어 온전히 드러난 제 모습에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다라이 이어주지도 않겠어요.
껠꼬닥할까봐. 정신 쑥 빼고 여름을 보낸 티가 어찌 그리 막무가내로 나던지 정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한밤중에 본 반달을 정말 내가 본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저 꿈속처럼 바깥엔 안개가 자욱했답니다. 이리 바람 한 번 쐬었으니
심기일전!!!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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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umi 2011/08/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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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잘 다녀오셨네요!! ^0^
저도 신랑 고모, 외할아버지댁 3박 4일 연구실 여행 1박
2일
잘 먹고 잘 쉬다 오니 이거이거 살이 쪄서 -_- 오늘 부터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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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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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여행답네요.ㅎㅎ 즐거운 느낌이 마구마구 우러나는 걸 보니 시댁 쪽 여행이 괜찮으셨나 봅니다.
뭔
다이어트는~~ 궁시렁 궁시렁. 뺄 살이 어디 붙었다고.ㅎㅎ 전 살 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처진 살 올려붙일 방법 궁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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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2 2011/08/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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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경이군요. 역시 한국은 금수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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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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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훨씬 더 멋진 풍경을 담은 것이 많았는데 등장인물 탓에 저 정도 사진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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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돌팔이 2011/08/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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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에 가서 호수 구경하심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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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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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호수가 아름다운가 봅니다. 저렇게 큰 호수는 처음인데 정말 눈뜨고 밤 새우며 절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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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돌팔이 2011/08/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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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고 2시간 걸쳐서 횡단하는 호수라면 좀 이해가 되시겠죠? 바다인줄 알았는데 호수라는...**a 시퍼런 물의
호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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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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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배를 타고도 2시간이라니.
저 호수엔 오리배가 있었습니다. 발로 마구 저어야 가는 배.
한 가족이 쌈질해가며 저어 가는 걸 깔깔 웃으며 구경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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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처녀 2011/08/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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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갔다 오셨구나!!!!
남동생이 산정호수 근처에서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산정호수하면 더 오르는 것이
면회가는 곳... 이런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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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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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잖아도 돌아오는 길 내내 군대 차량과 ㅇㅇ사단 표지판을 지겹게 보았습니다. 속초에서 복무한 남편도 여기 이렇게 부대가
많은 지 몰랐다 하더군요. 예전 대학 친구, 철원 GP에서 복무하면서 힘들다 한다고 구박했던 생각에 반성도 하고 이젠 군필한 아들
생각도 나고~~ 돌아오는 길이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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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314 201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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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별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주 아주 어릴 적(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아버지 어머니랑
갔었지요. 고즈넉한 곳이었다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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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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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책길에 김일성 별장터라는 표지판이 있었어요. 흔적도 안 남았으니 그저 그런가보다 했답니다. 사람이 없을 때라
여전히 고즈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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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2011/08/2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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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습니다 ㅎ 저도 휴가 한번 가봤음 하는 소원이... 제가 누님보다 한가지 좋은건 저런 경치를 매일 본다는거죠
ㅎㅎ 그래도 약오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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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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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저 20년 만에 휴가가 제대로 가본 겁니다. 그런데 정말 일하면서 그냥 지나치듯 보는 것과 느긋하게 놀러가
구경하는 건 다르네요. 전 여행은 발로 하는 거라 생각해왔는데 정말이더라는 것! 계속 약 올릴 수 있는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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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2011/08/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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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있음 ㅠ.ㅠ 부러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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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2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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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셔요~~~~ 여간첩님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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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 2011/08/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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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커플이라고 할가요;; 저는 토요일날 놀고 집사람은 일요일날(간혹 일욜도 출근)에 놉니다. 둘다 하루라도
빠지면 비상사태가 발생하므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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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3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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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칠월칠석엔 우짜든지 만나셔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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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쉬모드 2011/08/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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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맘이 고즈넉해지네요,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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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8/3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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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휴가철을 살짝 빗겨가 한적해서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관광지는 어디든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주변 자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가가 우글거립니다. 참 속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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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예요 2011/09/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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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번에 여름휴가라는거 결혼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한 번 다녀왔어요..ㅎㅎ
산정호수 좋네요~
한
3년 전 쯤..
산정호수 근처까지 갔다가 자동차 행렬을 못 견디고 그냥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형기 시인의
'호수'가 저도 훨씬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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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1/09/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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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죠? 두번째 시가 저 호수가 주는 느낌이랑 닮았어요.
휴가객들이 우르르 나올 시간에 들어가 사람도 많이 없고
마구 더운 철은 피한 덕에 걷기도 좋았습니다. 들국화님도 휴가 잘 못가셨구나. 우리 두어해만에 한 번 씩은 꼭 다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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