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lyn
2009. 7. 23. 22:59
한겨레 블로그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열 여섯의 알베르토 망구엘은 '피그말리온'이라는
영어/독일어 전문 서점에서 일하면서 당시 예순 다섯살의 대 문호 호르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게 된다.
당시 국립도서관장을 지내던 보르헤스는 저녁이면 망구엘을 불러 책읽기를 시켰던 것.
집안 내력으로 서른 살
무렵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던 보르헤스는
나중에 아예 실명을 했다.
자신이 읽어주는 책에 빠져드는 어른이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도 잘 모르면서
소년이 책읽기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생각을 키워가는 모습이 천천히 보인다.
그 덕인지 아니면 원래 타고 난
건지
망구엘 역시 이름난 소설가였고 번역가, 편집자였으며 세계 최고의 독서가가 되었다.
보르헤스가 모습이 보이는 듯.
것봐,
내 옆에 있기만해도 되는 거야, 하고 당연해 하는.
이년 쯤 전 망구엘의 어마어마한 책 <독서의 역사>를 코 파묻고
봤었는데 그래서 이 책도 반가왔다.
그러나 앞 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두께가 얇은 데다 실제 내용은 더 적다.
반은
보르헤스에 대한 소개가 차지. 거기다 삽화까지 들어가 있다.
망구엘의 글 만으로 책을 만들기는 너무 양이 적었던 건지, 호르헤 보르헤스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주려한 건지는 알 수 없음.
그런데 이렇게 반 이상이 부록이라면 좀 김빠진다.
아무리 내용이 책을 읽는데 혹은
지식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해도.
보르헤스의 책은 한 작품도 읽어보지 못했다.
사실 이름도 그저 듣기만
했을 뿐 온전히 성과 이름을 다 알지도 못했다.
이만하면 궁금해 억지로 구해볼 만한데 환상적 사실주의의 대가라는 표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환상적인' 이 주는 SF 느낌 땜에.
기회가 닿겠지. 나와 보르헤스가 인연이 있다면.
보르헤스는 무척 대단한 천재
작가였단다. 어릴 적 부터 주위에서 알아볼 정도로.
그 천재성보다 더욱 강한 게 그의 기질이었는지 실명이 그에게 얼마나 큰
약점이었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오히려 시력을 잃은 그의 기행이 더 빛을 발할 정도.
"보르헤스는 모형지도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훑듯이 책등을 어루만진다. 그곳의 지형을 알지는 못해도 살갗으로 지리를 읽은 것 같다.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는 책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 뭐랄까, 장인의 직관 같은 것이 지금 만지는 책의 내용을 알려주는지, 분명히 눈으로는 읽을 수 없는 그 책의 제목과 이름을
판독해낸다"
진짤까?
무지하게 박학다식했으며 경계를 두지 않았고, 가톨릭 국가 국민임에도 가톨릭을 싫어했고
페론을 아주
미워하고 경멸했고 흑인도 싫어했단다. 보편적인 중요 문화가 없는 열등 민족이라고. 크~~~ 아프리카엔 가보셨을까? (이 경우 흑인이 아프리카
흑인인가, 남미에 사는 흑인인가 아니면 그저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의 총칭인가? 에고 또 샛길로 가고 있다)
아주 잘난 척 하면서도 기지가
넘쳐 흘렀고 낭만적이다가 가혹하기도 한 작가의 여러 모습이 망라되어 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에 이런 천재작가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반짝, 그러나 내가 너무 아는 게 적어 그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해 아쉽다.
조금씩 남미 소설도
읽어 볼 것.
(내가 읽어 본 남미 소설은 바르가스 요사의 <나는 훌리오 아줌마와 결혼했다>가 전부다. 참 엉뚱하고 재밌는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나중에 다시 읽으니 그 느낌이 나질 않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였는 지 짐작할 수 있는 시 한
편.
젊은 작가에게
전진의 꿈을 품는
것은
부질없나니.
바다만큼 많은 글을 쓴다
하여도
이미 보르헤스가 썼을 테니까.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 (아르헨티나 소설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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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갈마왕 2009/07/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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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가 대단하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한 방에 코를 죽일거야 없는거 아닌가... 젊은이에게 포기시키는
ㅋㅋ
저야 책을 별로 안읽어서 모르지만, 이름만 아는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작가인지 몰랐네요. 이름도 대단히
안외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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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09/07/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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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제말이요.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 하고 다시 책에서 이름 찾아보고 좀 있다 뭐더라 하고 다시보고 했다니까요. 그래서
남미 쪽 책에 선뜻 손이 안가나봐요.
어마어마한 작가인가봐요. 그래서 다른 사람 기죽이기도 잘 했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전 그냥
끄~~응 할 밖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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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 2010/05/1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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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보르헤스 얘기라 글 남기고 가요.^^ 정말 저 표현이 딱이군요. 뭘 쓴다한들 보르헤스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의 글을 읽으면 출구를 찾고 싶지 않은 환상적인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더군요. 인간이
아닌거 같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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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0/05/1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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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를 좋아하시는 군요. 저도 한 권은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여지껏~~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고
게으르니 진도는 안나가고 항상 마음만 급하답니다. 한 3년, 맘 상한 일땜에 책을 완전히 놓아 버렸더니 제 속도로 돌아가기가 무척 힘이
드네요. 오래된 글인데 찾으셨네요. 별 내용이 없어 창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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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처녀 2010/05/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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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보르헤스 글을 참 좋아합니다. 보르헤스를 좋아하게 된 것은 움베르토 에코때문이거든요. 제가 움베르코 에코의
왕팬이라서 그에게 영향을 준 보르헤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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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0/05/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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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없으세요? 전화하려다가 혹 한밤중 아니신가 해서 여기저기 들락거렸는데 여 와계시네요. ㅋㅋㅋ
저도
에코 좋아해요. 너무 어려운 글은 뺴구요. ㅋㅋㅋ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책이 <푸코의 진자>였어요. 마지막에 등골이
오싹~~ 귀신나오고 피 흐르고 그딴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저분해서 안 보는데 그 책은 어찌나 싸늘하던지. 무조건 보르헤스 책 한 권
봐야겠습니다. 쌓여있는 책들 언제 다읽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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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처녀 2010/05/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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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푸코의 진자에 나오는 파리지역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공예 기술 박물관이였지요. 후배는 괜히
나따라 다녔고요. 책읽은 것보다 지역을 답습했던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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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in 2010/05/2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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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정말 부러워요.ㅠ.ㅠ 전 파트릭 모디아노를 좋아하는데 빠리의 작가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이트에 갔다가 모디아노 책 내용을 따라 빠리를 답사하는 강좌를 연다는 걸 보고 얼마나 안타깝던지.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메일
보내서 답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그전에 묵었던 호텔이 있던 Rue Cujas의 카페도 포함되어 있어서 아~~ 공부 열심히 할껄~~ 하고
후회막심! 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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