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달이 태양을 삼키다

merlyn 2009. 7. 23. 22:11



달이 태양을 감히
삼킬 듯 삼킬 듯 하다가 그냥 가버렸다.
일식이 마음이 쏠려 있었으면서도 청소하느라 잊고 있다가
문득 밖을 보니 맑기는 한데 그래서 해가 쨍쨍하기는 한데 뭔가
어두운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 일식!
현상한 필름 까만 꼬다리를 들고 다시 썬글라스까지 끼고
올려다 보았다.
우~~~~~~~~~~~~~~~와~~~~~~~~~~~~~~~~~~~~
해가 초생달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에나!!!
 
그때까지 드러누워 자고 있던 아들 놈을 꺠우니 부시시하게 나와
하늘을 찡그리고 올려다 보더니 감탄을 해댄다.
그떄부터 둘이서 계속 들락날락.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햇볕을 통쨰로 쬐어도 시원하기만 하다.
'얘, 이럴 때 나가 뛰어야하는데 그지? 시원하게~'
'억울하다!'
'억울하긴 임마 그러게 누가 그렇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래냐?'
 
둘이서 말싸움을 하다 점점 햇살이 온전하게 제 빛깔을 찾아가는 걸 봤다.
이상하게 마음이 쓸쓸했다.
아버지가 건강하셨으면 틀림없이 일식이 더 근사하다는 제주도까지 가셨을께다.
별자리며 일식, 혜성 따위를 다 아버지께 배웠는데.
 
다음 일식은 2035년이란다.
헤아려보니 내가 칠십이 넘어서다.
우웩~ 하니까 아들 놈이 '젊었네 뭘, 왜 그러슈'한다.
'임마, 그 나이가 싫은 게 아니라 할머니가 되서 썬글라스끼고 필름 쪼가리들고
하늘 올려다보며 낄낄거릴 날 생각하니 꼴사나와서 그런다'
생각만해도 즐거운 지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며 웃는다.
 
곱게 늙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