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에서 가져옴
덜커덕
merlyn
2011. 3. 29. 17:01
2년 쯤 전에 찍은 뒷통수를 봤다.
머리카락이 까맸다.
지난 가을부터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머릴 감을 때마다 한 뭉치씩 무슨
시위나 하듯 손에 묻어 나오더니
갈래갈래 흰머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라, 이것봐라~ 했는데 정신없이 쏟아져 나와 뒷통수
반을 흰머리로 채웠다.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진과 딱 대놓고 비교하니 마음에 쿵! 하는 게 울리는 것 같다.
지난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땐 눈물이 났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늙는 건 괜찮았다.
진짜 괜찮았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눈이 피곤해지고 돋보기를 끼고 어쩌다 머릿속에 숨은 흰머리도 찾아내고 무릎이 간혹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늙고 있다는 게 참 슬퍼진다.
아무 것도 해놓은 거 없이. 원하는 거 뭐 하나 제대로 해 본 것도
없이, 감옥에 갇힌 듯. 그저 맥놓고 하루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구나.
내가 좋아하고 열광하는 건 다
젊음이다.
이젠 그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조금씩 낡아가게 되면 어느 날 난 건조하고 건드리면 사각사각 소리가 날 것 같은
모습을 하게 될 거다.
정말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