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내일 모레

merlyn 2016. 6. 10. 22:02



  점심 먹고 남편이랑 베란다 쪽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 어! 여보, 오늘이 그날이다!
- 무슨 날?
- 그날, 당신이 목빠지게 기다리던 날,
- ???
 
 오십 초반이 넘어서면서 뭔 일만 있음 남편은 '내가 환갑이 내일 모렌데~~' 이랬다.


 늙는게 그리 좋은 지 아님 너무 무서운 건지 어쨋든 지치지도 않고 이 소리를 되풀이하는 바람에 나랑 아들은 물론 친정 식구들 까지 귀에 더께가 앉을 지경이었는데 나이 먹는 게 그리 좋으냐, 뭔 자랑이라고 환갑 환갑하느냐 지청구를 줘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 번은 처제 즉 나의 여동생의 '형부 그러다 환갑되면 그 다음엔 무슨 말 하실 거예요?' 라는 질문에 남편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내가 냉큼 '내가 칠순이 내일 모렌데~~ 그러겠지' 했더니 다들 깔깔거리며 맞다맞다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정말 진짜 한치의 오차없이 내일 모레가 남편 환갑이다.
 이 말에 그러네 하고는 같이 한참 웃던 남편은 손전화기를 가져오더니 녹음기를 열어 나더러 한 마디 하라고 한다. 그래서 축하합니다, 드디어 내일 모레가 당신 환갑이네요. 어쩌구 저쩌구~~~ 해줬다.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둘이 그런 장난스런 소리를 녹음하며 낄낄거리는데 문득 가슴 속 깊숙히에서 뭔가 찡~~하는게 올라왔다. 산 넘고 물 건너, 구비구비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내일 모레가 지나면 틀림없이 또 녹음기 돌리는 것 마냥 그럴게다. 칠순이 내일 모렌데~~~ 아유, 큰일이다.
 



환갑이 내일 모레인 남편의 나름 정체 감춘 셀카. 기분이 무척 좋은 나머지 블로그에 올린다는 말에 OK!는 물론 선명하게 색 보정까지 해줬다. 정말 좋은가 보다.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