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lyn
2011. 11. 29. 21:06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대체 왜 그런거지?
이틀째 끙끙거렸는데, 밤 11시 마루바닥에 댓자로 누웠다 번쩍 생각이
났다.
벌떡 일어나
"클났다!" 하고 소릴 질렀더니 곁에 있던 남편과 아들이 깜짝 놀란다.
마늘! 마늘을 안 넣었다.
진짜 큰 사고
쳤다!
냉장고로 달려가 열어보니 미리 다 까서 다져 넣어둔 마늘꾸러미가 얌전히 놓여있다.
이런
젠장~~~ 바보, 멍췡이, 한심이, 어쩌구 저쩌구~~~~
지난 주 김장을 했다.
컨디션이 별 좋지 않았는데 하필 욕심을 내
작년보다 더 많은 양을 주문해둔터라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마늘 생강은 미리 다 까서 다져두고 젓갈도 다 갖추고
아침부터
전날 썰어놓은 무채에 양념을 잘 버무려두고
매년 그렇듯 택배기사님이 일찌감치 내려주신 배추도 헹궈 물 찌어두고.
그런데
아무리
간을 해도 김치속 맛이 이상했다.
맵기도 괜찮고 간도 좋은데 뭔가 이상했다.
알 수가 없어 끙끙대다 몸이 아파 입맛이 변해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버무려 김칫통을 꽉꽉 채웠다.
그리고도 남아 엄마한테도 한 통 가져다 드리고 뒷설겆이까지 끝내니 예정대로 오후
6시.
잘 끝냈네, 신통하다 하고 실컷 자화자찬을 했는데
다음날 기대를 갖고 들춰본 김장에선 여전히 뭔가 빠진 냄새가
났다.
왜 이런거지?
이틀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걱정을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난 거다.
마늘을 빼먹다니, 대체
이런 말 안되는 짓을~~~
스텐 다라이에다가 한 통씩 다 쏟아붓고 배추속 양념에다 마늘을 집어 넣었다.
여덟통을 다 하고
뒷설겆이 하고 나니 밤 1시.
남편이 도와줘 이 정도로 끝났지. 에구구~~~
다음날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엄마
큰딸 노망나서 스님 드시는 김치 담궜네" 했더니
대번에 "마늘 안 넣었구나" 하신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엄마 위로가 어째
좀 어색했다.
엄마도 늙고 나도 그런가보다.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멀린아~~~
그러나 저러나 김장 맛이 제대로 날려나
걱정이다.
|
|
대갈마왕 2011/11/29 21:48
|
|
새로운 맛이 날거에요. 사람맛이 제대로 나는 새로운...^^
| |
|
|
|
merlin 2011/12/02 10:30
|
|
ㅋㅋ 건망증 걸린 사람 맛이 제대로 나는 김치면 어떡해요~~~
| |
|
|
|
화분2 2011/11/30 07:34
|
|
저도 많지 않은 양이지만 마늘을 안넣고 김치를 담궜다가 다시 칵 쏟아서 버무린 일이 있었지요^^ 다행히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답니다. 아직도 몸이 편치는 않으신가 봅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
|
|
|
merlin 2011/12/02 10:37
|
|
화분님도 그런 일이! ㅠ.ㅠ 속이 상해 김치통 열어보기가 싫어요. 한참 그냥 두면 제대로
익겠지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다 나아 또 열심히 두리번 거리고 있답니다. 화분님도 이 겨울 건강하게
보내세요.^^
| |
|
|
|
queen314 2011/12/04
17:38 |
|
아 하하하하... 이참에 출가를.... 나무관셈...
전 그래도 젓갈 없고 마늘 않넣고 담근 절 김치가
맛있던데요 ?
| |
|
|
|
merlin 2011/12/05 15:23
|
|
퀸님이 드신 절 김치는 그야말로 스님들의 공력이 담긴 김치잖아요. 제 것은 에휴~~~ 그저 건망증이 가득 담긴~~ 어쨋든
맛있어야하는데 김치냉장고에 들여놓고 안 열어 보았습니다. 오며가며 주문만~ 맛있게 익어라 익어라 익어라~~~
| |
|
|
|
바다와섬 2011/12/08 21:40
|
|
으하하하하 마늘 빠진 김치라니욧! 앙꼬빠진 찐빵, 고무줄 빠진 빤쓰보다도 마늘빠진 김치가 더 허전할거 같아요
ㅎㅎ 그래도 그렇게 스스로 기억해내시고 마늘 넣으셨잖아요. 멀린님 바보 아니에용~~~ 이렇게 재밌는 글을 이제야 보았네요 ㅠ.ㅠ
(한겨레 인터넷 서비스가 바보임)
| |
|
|
|
merlin 2011/12/08 22:52
|
|
으하하하하~~ 하는 섬님 웃음소릴 들으니 진짜 한 껀 제대로 했구나 실감나요. ㅋㅋㅋ 양념을 계속 찍어먹어보는데 뭔가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것이, 뭔가 톡 쏘는 맛이 빠진 것 같은 것이, 어째 김이 솩~~ 새어버린 같은 것이~~~ 주위에 미리 마늘도 다
갈아 놓아 쉽게 했다고 중계방송은 다 해놓고 정작 마늘 빠진 건 몰랐다는 거 아닙니까. 어찌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던지요. 빤쓰 허리춤을 쥐고
다니는 게 낫지. 에휴~~ 어쨋든 오늘 아침 살짝 열어본 김칫통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긴 했습니다. 마이크로 마인드라 먹어보진
못했어요. ㅎㅎㅎ 바보 맞아요. 거기다 멍췡이, 머저리, ㅂㅅ, ㅉ ㄷ.
| |
|
|
|
queen314 2011/12/17
14:50 |
|
"ㅂㅅ, ㅉ ㄷ" <=== 이거 해독하기 무지 어려운 암호 같은데 "o ㄴ, ㅗ ㅏ" 가 맞습니까 ? 제가 맞게
해독한 거라면 "ㅉ ㄷ" 아닙니다. 그말에는 "ㅉ ㅈ ㅎ ㄷ"는 의미가 들어있는데..... "ㅉ ㅈ" 한거하고 건망증하고는 의미가 좀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ㅂ ㅅ" 도 마찬가지지만....
| |
|
|
|
merlin 2011/12/17 23:57
|
|
마구 튀어나오는 욕을 여기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좀 정제된 걸로 골랐습니다. 욕이 뭐 딱 경우에 맞게 튀어나오진
않잖아요. 그저 자기 비하에 연결된 건 뭐든 ㅌㅌㅌㅌ. 트랙백까지 거셨으니 망신 제대로 시키고 계신 거예요. ㅎㅎ
| |
|
|
|
나리타산 2011/12/13 13:34
|
|
그럴수도 있죠. 멀린님이 그러셨다니 왠지 저도 그렇게 할것 같은데욤?^^ 아! 절 김치엔 그러고 보니 마늘 안쓰겠군요.
절에 가서 공양해도 전 맛있게 잘먹었는데.ㅎ 그래도 아직 생김치일때 넣으셔서 아무 영향 없을거 같아요. 지금쯤은 맛있게 냉장고 안에서
숙성에 매진하고 있을 김장김치! 생각만 해도 군침이,,, ^ㅇ^
| |
|
|
|
merlin 2011/12/14 10:30
|
|
절 김치의 기억이 아무리 좋으셨어도 절대로 절대로 따라하심 안됩니다요. 김치 경력 삼십년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요. 맛보면 척 하고 알았어야 했는데 왜 이러지만 반복했다니까요. 익기 전에 생각이 나서 정말 다행이지요. 그러찮았음 내년 한
해 다들 고생할 뻔 했어요. 한 통 보내드리면 저도 좋겠습니다. ㅠ.ㅠ
| |
|
|
|
디페쉬모드 2011/12/14 23:10
|
|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면 그렇게 건망증같은 증세가 자주 나타난다더군요.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닌듯
싶습니다. 전 부천은 별로인데 여기 신탄진에서는 대놓고 먹는 식당 이모님이 아주 잘해줘서 좋아요. 늘 삼춘 오늘 저녁은 뭐해줄까?
삼춘 내일 아침은 무슨 국 끓여놓을까?
덕분에 저나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마치 집밥먹는것 같다며 다들 난리도
아니지요.
기회가 되면 멀린님이 보수공사하신 김장도 먹어보고 싶네요 ^^
낼 부터 서울은 쌀쌀해진다는데
감기조심하시구요~~~~
| |
|
|
|
merlin 2011/12/15 08:26
|
|
스트레스에도 건망증이 생기는 군요. 그렇담~~~ 위로가 되요. ㅎㅎㅎ
좋은 식당을 만나면 진짜 기분좋지요.
더구나 모드님처럼 바깥밥 계속 드셔야하는 분이면 더더욱! '이모' '삼춘'이라는 호칭이 참 좋네요. 전 그런 걸 잘못해
부러워요. 불경기라 그런 지 집 근처 가게들이 계속 바뀌면서 인테리어 공사들을 많이해요. 왔다갔다 하면서 눈여겨 본답니다. 혹
꽁지머리하신 모드님 계신가하고. ㅋㅋㅋ 만나게 되면 얼른 김장 한 통 드릴텐데. 맛은 보장 못하지만 땀이 두 배
담긴~~~
오늘부터 날씨가 더 추워진다네요. 디페쉬모드님도 건강하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