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자클린느 뒤 프레 첫장을 여니 눈에 익은 사진이
나타났다. 첼로를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뒤 프레의 행복한 모습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다닐 무렵 음악 애호가이면서 아마추어 클래식 기타리스트셨던 아버지 덕에 <월간
음악>이라는 잡지를 받아보는 호사를 누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온갖 소식을 다 전해주던 이 잡지가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묵은 잡지부터 새로 오는 것까지 심심하면 코를 박고 읽었다.
내 얄팍한 클래식 음악 지식은 그래서 그 시절 이후 늘어난 게 없다.
그 잡지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소식 속에 내 마음을 가장 많이 뺏어버린 사람이 '자클린느 뒤 프레'였다. 불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금발과 굵직한 얼굴 윤곽이 내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는데 그 당시 종종 보던 노르웨이 배우 리브 울만과 비슷하게
보여 북구쪽 사람인가 생각했었다. 자클린느 뒤 프레 Jacqueline Du Pre는 영국 출신 첼로 신동으로 스무살도 되기
전에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다른 여성 첼리스트와는 다르게 힘있고 강한 주법으로 첼로를 활로 톱질해 반 동강 내려한다는 말까지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소탈한 성품을 가져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한다. <월간 음악>에 거의 매달 실리다시피한
그녀의 연주 소식과 극찬의 평을 읽으면서 혼자 열심히 박수를 보냈고, 햇살을 연상시키는 환한 웃음 - 이가 다 드러나게 크게 웃는- 부~하게
일어나는 환한 머리카락을 볼때면 괜한 친근감에 마음이 행복했다. 그녀가 연주하는 첼로 한 음절 들어보지도 못했으면서.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그녀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온 몸의 근육이 마비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무슨 끔찍한 소식인가
놀랐지만 더 이상 그녀에 관한 소식은 실리지 않았고, 폐간이 되었는지 그 잡지도 더 볼 수 없었고, 나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차 뒤 프레는
잊혀져갔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1987년 10월 신문에 실린 소식으로 그녀가 15년 가까운 외롭고 고통스런 투병생활 끝에 마흔
세살로 세상을 떠난 걸 알았다. 참 쓸쓸했다. 이 책 속의 자클린느는 따뜻한 가족처럼 보이는 액자 속 사진과 같은 가정에서 컸고
(정말 사진이기만 한) 그 속에서 항상 부모의 사랑에 목말랐던 것 처럼 보였다. 주위엔 기쁨과 사랑을 주는 존재였지만 자신은 항상 텅
비어있는.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 피아니스트이고 지휘자였으면서 이기적이고 야망에 가득찼던 다니엘 바렌보임의 후안무치한 행동이야 워낙 유명한
이야기고 부모 형제에게까지 외면당했던 그녀의 만년을 알게 되면서 많이 가슴 아팠다. (책에는 바렌보임을 꽤 동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이런 젠장할~) 병이 심해져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의 여성성과 존재감을 잃는 것을 무척
고통스러워했다고. 그럼에도 오랜 기간 여전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을 위한 공개 행사에도 용감하게 모습을 나타내곤
했단다.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던 그 시절에도 그녀는 내내 외로웠고 원하는 건 따로 있었으나 -아이를 낳고
남편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따뜻하고 소탈한 삶 - 의지와는 다르게 쉴새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고 병 때문에 고장난 몸을 자신의 약한 정신력
탓으로 돌리면서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녀의 유명한 환한 웃음은 휑한 속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연주했고 또 좋아했던 곡이다. John Barbirolli가 지휘한 BBC 심포니와의 협연 동영상을 올리고 싶었지만 연주 화면이
나오는 게 없어 할 수 없이 Daniel Barenboim이 지휘한 걸 담았다.
P.S. 자클린느 뒤 프레는 유태인인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유태교로 개종을 했다. 그래서 런던 교외에 있는 유태교 묘지에
묻혔는데 불행한 과거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다니엘 바렌보임은 한번도 아내의 묘지를 찾은 적이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John Barbirolli 경과 함께한 연주가 더 좋았습니다. 참 비장한 느낌을 주는
곡이지요?
뒤 프레가 활동할 당시 유난히 유태계 음악인들이 많았지요. 바렌보임이 유태인으로서의 한계를 넘기 위해 그녀와의
결혼을 이용했다는 얘기에 당시 어린 맘에도 꽤 화가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가 일정이 없을 때는 자신이 연습하는 현장에 꼭 불러 보게하고
자신과의 협연에 많이 끌어들여 뒤프레는 그 모든 요구를 들어주느라 쉴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고 하네요. 결혼도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응원한다고 뒤 프레를 데리고 이스라엘에 갔다가 즉흥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웨딩드레스를 제대로 갖추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고
하네요.
에너지가 충만하고 어린아이같은 단순하고 낙천적인 성품을 지녔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에너지를 몽땅 바렌보임을 위해 써버린 것
같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습니다. 말씀대로 유태인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첼로를 볼때면 불타는
듯한 실루엣이 떠오르곤 했는데 책으로 읽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병은 근육에 붙어있는
신경에서 근육으로 가는 신호 전달이 안되어 생기는 병이고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 가늘어지고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병이 진행되면 손발을 못쓰게
되고 근육이 균형을 잃어 몸이 뒤틀리게 되며, 입을 움직이는 근육이 위축되면 말도 못하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게 되어 나중에는 호흡조차 못하게
되어 죽게되는 .. 왜 생기는지 원인도 모르고, 치료할 방법도 없이 서서히 진행되는 무서운 희귀병입니다.
성은 프랑스 식이지요? <힐러리와 재키> 라는 드라마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영어자막으로
되어있어 천천히 해석해가면서 봐야해서 아직 못 보고 있습니다. 자클린느 모습을 왜곡했다해서 친구들에게 항의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병든 후에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부모, 남편 모두 외면해버려 언젠가 찾아본 묘지 사진이 더욱 쓸쓸해보였습니다. 바렌보임에겐 그 매정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더군요.
자동으로 줄리앤드류스의 영화 "듀엣포원"이 생각나네요. 친구 한명은 기타리스트인데 손가락이 경련으로 말을 안들어서
포기했어요. 친구가 그렇다니까 처음으로 그 고통이 어떤 건지 조금 더 간절하게 이해가 되더군요. 다른 친구는 만화가인데 시력을
잃었구요.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수 없게하는 질병은 정말 어떤 것보다 더 커다란 고통이겠구나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내가 같은 경우가 되지
않는한은 절대로 모르겠지...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들 태어나던 해, 2000년도에 갑상선 이상으로 갑자기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증상이 생겼었는데요.. 이
첼리스트의 병이 아닌가.. 하고 나름 고민했었던 기억이.. ㅎㅎ 다행히 저는치료받고 그 이후 별 탈없이 잘 살고 있답니다.
세계적인 연주자 안되어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을 기도하며 살고 있지요. ^^
언젠가 유레카의 함석진 논설위원이 쓴 글에서 똑같은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연주를 하는 듯 하다고
댓글을 달았었는데, 저의 다음 댓글을 단 분은 그녀가 그녀의 동생 남편과 몰래 동거했었다면서 부부문제는 함부로 말할 것이 못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병든 아내를 나태해졌다며 몰아세웠던 다니엘 바렌보임의 삭막함 때문이었다고 생각이됩니다. 함석진 논설위원의
글에서 바렌보임이 명예 팔레스타인이 됐다는 이야기와 음악 조련사로 불렸던 그가 혹독함 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끝맺음을
했습니다. 칼럼 말마따나 아내의 죽음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안타까왔던 것은 저런 놀라운 재능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 왜 좀 더 강한 자아를 가지지 못했는가
였습니다. 바렌보임이 어떤 인간이었든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면 좀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불치병에 대한
반응 조차 '남편에게 지적당했던 게으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니~~ 바렌보임의 변신은 진심으로 받으들이기 힘들더구만요. 권력의
세계에서 내보이는 색깔엔 그리 믿음이 가질 않아서요. 그러기엔 너무 잔인한 인간이었습니다.
사랑은 마음을 멀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눈이 머는 것은 괜찮지만 마음이 멀게 되면, 정말 보는 것은 고사하고 백지 같은
머리가 됩니다. 저도 한 때 사랑에 멀어 사랑하는 이의 눈 빛 한 번이 얼마나 간절한지 경험해 본 사람으로써 뒤프레의 마음과 순종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필요없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미안한 것이고 죄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