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초록과 자전거의 나라

merlyn 2010. 1. 2. 00:49




여행에서 돌아온 지 거의 열흘이 지나서야 여행 일기를 올린다.
아줌마의 일상은 여행하기 전에도 또 후에도 그저 바쁘기만 하다~~는 핑게도 좀 민망하다. 하는 일도 별 없이 시간만 보냈으니 ㅋㅋㅋ
 
12월 11일 시작!
내내 구름이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문득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난 저 아래 암스테르담은 온통 밝은 초록빛이었다.
'이게 뭐야~~ 이거 완전 별천지에 왔네!' 하는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것.
아이구 두터운 파카를 입고 왔는데 더워서 이를 어째~~ 였다.
온통 초록색인 땅위에 아기자기 에쁘장한 집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가느다랗게 수로와 떠가는 배도 보이고.
정말 동화나라 같았다. 여기는 겨울도, 싸늘한 바람도, 시린 손도 없겠구나!
그러나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같은 소리~~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하는 곳으로 들어서니 썡~~ 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물론 비행기에서 같이 내린  만만한 티셔츠 바람의 떡대 서양인들도 가방 속에서 부시럭거리며 두꺼운 옷들을 꺼내입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네덜란드를 떠날 떄까지 그 미스테리를 풀지 못했다.
한 겨울인데 어떻게 풀이 몽땅 초록색일 수가 있는지.
여러번 이 나라에 왔었던 남편은 어디서 듣긴 했다며 그런 종류의 잔디를 심는다고 말했지만 길가 초록 들판을 들여다 보면 잔디 곁 이름모를 잡초들도 똑같이 싱싱한 초록색이었다.
예쁘다고 다들 감탄하는 집은 눈에 안 들어오고 왜 자꾸 풀밭으로만 눈길이 가는지.
물어봐 달라해도 들은 체도 안하는 남편을 두고 혼자 궁시렁거렸다.
궁금한 거 하나도 없는 심심한 사람같으니!
영어공부 열심히 해 담에 오면 내가 직접 알아내고야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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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찾아보니 가까이서 초록식물을 찍은 것이 없다. 어쨋든 보기엔 봄날이었다.
 
거리를 구경하며 아주 색달랐던 것이 애기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죽어라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나도 자전거 애용자라 처음엔 무지 반가왔는데 이게 만만치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론 자전거는 안장 위에 앉았을 때 두 발이 땅에 닿는 걸 골라야 한다는 건데 이 곳 자전거는 전부 쌀집 아저씨가 타는 대형자전거였다. 발이 땅에 닿기는 커녕 완전 대롱대롱 매달려 타고 다닌다. 거기다가 어찌나 험하게 몰고 다니는 지 차는 안 무서운데 자전거 피하느라 종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거기 사람 말로는 자전거 한 대에 600유로가 나간다는 데 -그럼 백만원이라는 소리?-그래서 도둑이 엄청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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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 사진처럼 자전거 뒤에는 커다란 비닐 가방을 양쪽에 매달아 짐을 싣는다.
 
둘째날엔 남편의 꼬임에 넘어가는 척 해주느라 관광지마다 다 있는 이른바 빨강버스를 타고 일명 '노인네' 관광을 했다. (이건 내가 붙인 이름. 발바닥은 놀면서 차 안에 앉아 여기저기 빙빙돌면서 구경하니까)  다른 건 다 그저 그랬는데 점심 먹으라고 내려준 곳이 그 유명한 델프트.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델프트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걸 만드는 공방에도 갔는데 구경을 다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그 곳 바로 앞을 흐르는 운하 위로 힘차게 노저으며 카누(?)를 타고 가는 아줌마가 보였다. 남편이 십 여년 전에 이 곳에 왔을 때도 노저어 가는 씩씩한 아줌마를 보고 참 인상적이었다고 내게 얘기해주었는데 희한하게 이번에도 똑같은 모습을 본 것이다. 남편은 같은 아줌마가 십 년이 넘게 여기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가보다며 좋아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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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로 델프트 시장으로 들어서니 줄줄이 노점이 열려있고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곳에서 그 유명한 헤링을 팔고 있었다. 청어 날 것을 소금에 절여 양파 다진 것과 함께 그냥 통째로 먹거나 빵 사이에 끼어 먹는데 아주 인기가 좋아 그 곳 사람들은 동전을 연달아 내 놓으며 헤링을 한마리씩 집어 계속 먹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 온 한 쌍의 청춘 남녀는 한 사람은 폼 잡으며 청어 꼬랑지를 붙잡고 입에 넣는 시늉을 하고 여자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느라 요란을 떨고 있었다.
 
남편은 덩달아 옛추억에 신이 나서 헤링을 끼운 빵을 사서 내게 들이대는 게 아닌가!
음~~ 못 먹을 꺼야 없지. 다들 잘만 먹는데 하고 망설이는데 곁에서 생선튀김을 먹던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는다. 남편이 아내의 첫시도라고 아니까 보나뻬띠! -맛있게 먹으라는 프랑스말- 하고 응원! 난 입 딱 크게 벌리고 맛있게 먹었다. 긴장을 해서 맛있었는지 아닌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씩씩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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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링 먹는 건 못 찍었다.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바로 곁에 있던 치즈가게.
치즈의 나라답게 이런 종류의 가게가 무지 많았다. 그리고 어디든 시장이 제일 재밌고 신난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컴퓨터 쓰려고 대기 중인 아들 땜에 나중에 계속!




청학동처녀 2010/01/02 05:35
  헬링 맛있지요.
전 가끔 헬링 사다가 양파와 함께 후라이팬에 구워 먹어요.
밥을 고솔고솔하게 지운 다음에 헬링 구운 것이랑 먹으면 맛있거든요.
값도 무진장 사요.

구다치즈이다.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 치즈보다 네델란드 치즈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특히 구다치즈는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맙는 다고 하던데...

저의 개인적인 치즈 취향은 냄새가 심한 치즈 마니아입니다.
merlin 2010/01/02 11:01
  어! 구워서 먹으면 정말 맛있겠네요.
제가 생선 구은 걸 무지 좋아하거든요.
하여튼 비리지도 않은 지 아저씨들이 가게 옆에 서서 계속 입에 한 마리씩 넣는게 무지 재밌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브리나 까망베르인데 프랑스에서 기껏 산 거 드골 공항에서 다 버려야했어요. ㅠ.ㅠ 사연은 나중에~~
deca 2010/01/02 08:59
  저도 그 녹색 잔디는 늘 신기하게 생각해요.
한겨울에도 흰눈만 녹아서 걷히면 녹색이 드러나곤 하지요.
'황금빛 잔디'란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merlin 2010/01/02 11:04
  저도 참 신기했어요. 꽃도 피어있고.
시각이라는 것도 머릿속 판단에 꽤 영향을 미치던데요.
눈은 봄인데 몸으로 느끼느 건 겨울이라 내내 어리둥절!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종류가 다른 것 뿐이라면 우리도 심어보면 재밌을텐데.
문학적으로 문제가 생기려나요?
호주돌팔이 2010/01/02 09:04
  네델란드에 가서 잔디 구경하신 분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자전거 타면서 헬멧을 안 쓰네요? 여기선 안쓰면 불법.
경찰이 발견하면 자전거 바람을 빼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merlin 2010/01/02 11:10
  그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정말 헬멧을 안 썼네요.
안전면에서는 완전 꽝! 이었습니다. 핸들위에 아기를 태우는 요람같은 걸 만들어 갓난 아기도 눕혀 다니는 데 쳐다보는 제가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안전제일주의자인 남편은 저건 아동학대라고 야단이고. 두 세살난 아이들도 적응이 잘 되는 지 뒷자석에 만든 의자에 태연히 앉아 다니더군요.
자전거는 일단 넘어지면 무지 위험한 상황이 되는 건데.

바람을 빼 버린다니 그저 진짜 재밌네요. 옆에서 구경하면 더 재밌을 듯!
대갈마왕 2010/01/02 09:57
  뭐에요 뭐에요 헬링이 뭐에요~
사진도 안찍으시구 맛나게 드시기만 하셨군요~ ㅎㅎㅎ
이제 시작하였으니 기대할게요~
merlin 2010/01/02 11:34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단순한지라 먹을 때는 먹는 거에만 집중!하느라.
사진 전담이었던 남편은 풍경에만 골몰해 막상 블로그에 올리려니 적당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그게 참 아쉬웠어요.
헤링은 청어인데 날로 소금에 절여 양파 다진 것과 같이 그냥 먹거나 빵 사이에 끼워 먹습니다. 전 빵이랑 같이 먹어 비린 건 잘 모르겠던데요.
아쉬운 대로 요걸로~~

http://newsimg.bbc.co.uk/media/images/44712000/jpg/_44712933_herring_afp466.jpg
isshe 2010/01/02 20:09
  추억이 어린 곳 암스테르담.
집이 학교에서 멀지 않아 학교 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암스테르담은 작고 불도저로 밀어 놓은 것 같이 평평해 자전거 타기는 짱이죠.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헬멧 안 쓰고 씽씽.
비 오는 날 정장에 아이를 앞에 앉히고 핸드폰으로 전화통화 하면서
자전거 타는 사람도 흔합니다.

초록색 미스터리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만, 가을, 겨울엔 비가 많이 오고 별로 안 추워서 한국처럼 누렇게 뜰 일이 없죠. 다른 말론 :아주 짜증 나는 가을, 겨울:
merlin 2010/01/02 22:41
  어라~~ isshe님 암스테르담에서 공부하셨어요?
우와 정말 세계가 좁은 분이시네요. 대단^^
네덜란드 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무지 길어서 저는 사람들 허리춤에 매달려 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도 젊은 총각들은 무지 부끄럼이 많던대요.
초록색은 정말 춥지 않아서 그런건가요? 지금도 궁금해서리~~
megumi 2010/01/02 21:52
  아!!! 델프트!!!

베르메르!!!!!!

꼭 가보고 싶은 도시! ^-^
merlin 2010/01/02 22:36
  아! 메구미님 블로그의 소녀!
델프트 소개에 나오더군요. 베르메르의 고향이라고.
그의 그림은 거기서 못 봤지만 아담하고 그러면서도 흥겨운 곳이었습니다.
꼭 가보세요. 헤링도 먹고.ㅋㅋ